꼭 가 봐야 할 베스트 독립운동 현충시설 100중 7편으로 61번~70번까지이다.
현충시설을 방문하다 보니 의병에 관한 자료를 많이 접하게 된다.
의병은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국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외적에 대항하여 싸우는 구국 민병으로
역사적으로는 고구려와 백제유민(遺民)의 국가부흥을 위한 의병투쟁에서,
가까이는 중국에서 투쟁한 항일의병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병운동이 있었다.
의병의 활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을 지휘하는 의병장의 거의 대다수가 전직 관리·
유학자 등으로서 사회적 지위와 함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명문거족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 일제 침략 과정에서 일어난 의병투쟁은 대체로 세 시기로 나눈다.
제1기 의병은 1895년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살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 등을
강제 시행한 을미개혁(乙未改革) 이후의 을미의병(乙未義兵)이며,
제2기 의병은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 체결에 따라 일어난 을사의병(乙巳義兵)이며,
제3기는 1907년 정미7조약 및 군대해산에 자극받아 일어난 정미의병(丁未義兵)이다.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1910년 이후부터 이들 의병활동은 지하로 스며들거나
만주·러시아 또는 구미(歐美) 지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나 독립군 또는 광복군으로 연결되어
해외에서의 독립투쟁으로 전개되었다.
61. 전해산기념관(장수군 번암면 성암길 92)
62. 소충사(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산성로 725-23)
63. 이석용의병장 생가(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
64. 만해 한용운선생 기념관(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 백담사 내)
65. 의암 류인석 유적지(춘천시 남면 가정2리 473)
66. 한서 남궁억 기념관(홍천군 서면 한서로 667 (서면))
67. 연병호항일기념관(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68. 홍범식고택(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임꺽정로 16)
69. 운강이강년기념관(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683(완장리 96))
70. 박열의사기념공원(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 98)
61. 전해산기념관(장수군 번암면 성암길 92)...2019.04.28
2013년 5월 착공 2014년 6월16일에 전해산기념관이 준공되었다.
매년 9월9일(음) 추모사업회 주관 하에 제례봉행을 하였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본 추모비를 2003년 12월8일 현충시설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의병사진이다.
의병투쟁 연표...해산은 1907년 시작하여 3년동안 71회의 전투에서 연승하며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의병관련 기록들
62. 소충사(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산성로 725-23)...2019.04.28
소충사는 구한말 정재 이석용장군과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28의사를 배향하는 사우(祠宇)이다.
사당 정문인 숭의문을 들어선다.
부지 20,300평에 분묘2기, 사당20평, 기념관43평, 관리사 20평 등의 시설을
1992년∼2002.11월까지 조성하였다.
28의사의 묘소는 1995년 11월 독립유공자를 위해 성역화사업으로 조성한 소충사에 안장 하였으며,
정재 이석용장군의 묘도 전남 영암군 월출산에서 같은해 유족들의 천묘로 28의사와 함께 안장 되었다.
숭의문방향...멀리 고덕산이 보이며, 고덕산밑에는 이석용의병장의 생가가 위치하고 있다.
63. 이석용의병장 생가(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峰里)...2019.04.28
을사조약으로 일제가 침략의 야욕을 노골화하자 성수산 골짜기의 상이암에 동지를 규합하여
1907년 8월 28일 마이산에서 「호남의병장의 동맹단」을 결성하여 의병장으로 추대 되었는데
당시 의병의 수가 5백여명에 이르렀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로, 자연석으로 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웠다.
1칸 규모의 방 2개에 오른쪽 끝에 부엌이 딸려 있는 구조이다.
툇마루에는 이석용의병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정부는 1962년 3월1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64. 만해 한용운선생 기념관(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 백담사 내)...2019.05.17
만해 한용운선생 흉상 및 만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이 조각된 만해시비
시집 『님의 침묵』「군말」에서 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는 글귀이다.
여기서 ‘님’은 연인이라는 개인적 의미일 수도 있고, 조국·민족 등의 규범적 의미일 수도 있으며,
정의·진리 등의 이념적·지향적 의미일 수도 있다고 한다.
기념관을 들어서면 마주치는 좌상
기념관은 만해의 출가와 수행, 3.1운동과 옥중투쟁, 계몽활동, 문학활동, 신간회활동 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한눈에 만해의 일생을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백담사 내에는 만해당·만해적선당·만해교육관 등 만해 관련 건물이 들어서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공휴일에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65. 의암 류인석 유적지(춘천시 남면 가정2리 473)...2019.05.19
한말 의병운동 총수로 이름 높은 의암(毅菴) 류인석(柳麟錫) 선생의 위정척사사상(衛正斥邪思想)과
의병활동에 관련된 자료와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이다.
류인석선생은 1915년 3월 중국 봉천성에서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류인석은 조선 말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하고, 해외 독립군 기지를 개척한 한말(韓末) 의병장이자
독립운동 지도자였다. 1842년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박물관은 전시관, 강의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면적은 396㎡ 규모이다.
영상자료 5종, 패널 자료 22점, 내레이션 자료 2개, 유품 60종 등 82점을 포함해
서책류(15종 24점), 간찰·상소문(16종 19점), 유묵진본(4종 4점), 인장·벼루(2종 4점),
무기류(3종 3점), 기타(깃발, 의류, 지도 등) 20종 28점 등이 전시돼 있다.
1896년 영월에서 호좌창의대장(湖左倡義大將)에 올라 제천, 충주를 중심으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했다.
1908년에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해
1910년 6월 ‘13도의군(十三道義軍)’을 결성하고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됐다.
기념관 전경
66. 한서 남궁억 기념관(홍천군 서면 한서로 667 (서면))...2019.05.19
선생이 세웠던 학교...한서남궁억유적지는 기념관과 예배당 및 묘소(한서초등학교 뒤 유리봉)가 있다.
기념관에는 남궁억선생의 약력 및 업적에 대한 자료와 사진자료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황성신문 사장, 대한협회 회장, 배화학당 교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교육자, 언론인이다.
선생은 1919년에는 모곡학교를 설립하고 무궁화 보급 운동을 펼쳤다. 겉으로는 뽕나무를 보급한다고
내세우고 뽕나무 묘목에 무궁화 묘목을 끼워서 퍼뜨렸다. 그 무렵 나라 안의 초등학교와 교회에 보급된
무궁화는 거의 이곳에서 가져간 것이었다.
선생은 일제의 만행 및 열강의 침략을 폭로하면서 수차례 구속 및 구금을 당했다.
1933년 11월 기독교 계열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십자당(十字黨)을 조직,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8개월간 투옥되었다. 노령이 참작되어 석방되었으나 잔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1939년 사망하였다.
다양한 자료가 전시된 기념관
선생은 조선말 최초의 영어통역관이 되었으며 고종의 통역을 맡았으며,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수석총무와
사법위원을 겸임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 관계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나와 《황성신문(皇城新聞)》 사장이 되었다.
선생은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동산 잘살아라 이천만의 고려족”으로 끝나는 「무궁화동산」이라는 노래를 지어
모곡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 노래는 널리 퍼져 나라 안 곳곳에서 아이들이 즐겨 불렀다.
이에 일본은 남궁억을 잡아 가두고 모곡학교를 빼앗아 공립보통학교로 바꾸었으며,
이 학교에서 기르던 7만여 주의 무궁화 묘목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67. 연병호항일기념관(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2019.06.01
연병호선생은 한일강제병합 이후 국외로 망명, 만주와 난징, 상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상징조형물
기념관 인근에 있는 생가
2002년 1월 11일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에 소재한 생가가 충청북도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선생은 1963년 사망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68. 홍범식고택(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임꺽정로 16)...2019.06.01
조선 중기 중부지방 양반 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홍범식 고택'은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에
강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열사 홍범식 전 금산군수(1871~1910)가 태어난 곳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된 명칭은 '괴산동부리고가'로 되어 있고 고택앞 안내판에는 '일완 홍범식고택'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남향으로 지어진 건물의 안채 구조는 전체적으로 정면 5칸·측면 6칸의 ‘ㄷ’자형으로 ‘一’자형 광채를
맞물리게 하여, 광채를 합한 안채는 ‘ㅁ’자형이다. 사랑채는 좌측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시키며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갖는 중부지방의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69. 운강이강년기념관(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 1683(완장리 96))...2019.06.01
구한말의 의병장 이강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여 2002년 4월 개관하였다.
부지면적은 2만 6466㎡이며, 전시관·사당·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관 면적은 209㎡로 내부에는 이강년의 의병활동 연보과 교지(敎旨), 간찰(簡札)을 비롯하여
활·화살·조총·화약통 등의 유품, 훈장 및 포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활발한 의병활동으로 많은 전투를 벌이다가 1908년 일본군에 붙잡혀 그해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셨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70. 박열의사기념공원(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 98)...2019.06.01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인 박열(朴烈) 의사가 태어난 생가터이다. 박열 의사는 1902년에 태어났으며
1923년 일본 일왕을 암살하려다 체포되었다. 무정부주의자로서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였던 공로로
1989년 3월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공원내 기념관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박열(朴烈, 1902. 2. 3~1974. 1. 17)선생은 일제 강점기 동안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중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전시물중 옥중 결혼한 선생의 일본인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의 기롣들도 많이 있다.
선생은 한국전쟁으로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고 말았다. 북한에서 그는 조소앙, 엄항섭 등과 함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활동해 회장을 맡아 군대축소와 국제적 중립국화에 노력하였다.
1974년 1월 17일 서거하여 현재 그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하지만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에 끼친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은 남북한 양쪽을 비롯해 고향에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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