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립

꼭 가 봐야 할 베스트 독립운동 현충시설 100 - 4편(31번~40번)

행복 찾기 2019. 3. 8. 12:20

꼭 가 봐야 할 베스트 독립운동 현충시설 100중 4편으로 31번부터 40번까지이다.

섬여행을 마치면서 완도에서 출발하여 영광, 나주, 광주, 김제, 익산, 부여를 거치면서 돌아본다.

 

귀경길이 월요일이라서 기념관의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전국에 있는 독립영웅들을 만날수 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분들은 만나서 반갑고 생소한 분들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먼 귀경길에 역사적인 장소를 군데군데 들리면서 대한독립의 발자취를 느껴본다.  

 

 

31.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전남 나주시 죽림길 26)

32.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광주 서구 학생독립로 30)

33.광주백범기념관(광주 동구 학동 역사공원내)

34.이종희장군생가(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35.남강정사(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 65-1 )

36.가람이병기선생 생가지 및 기념관(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37.애국지사임병직박사 생가(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253-2)

38.석인 정태진선생기념관(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39.조소앙선생 본가 및 기념관(경기도 양주시 남면 양연로173번길 87)

40.근현대사기념관(서울 강북구 4.19로 114)

 

 

 

31.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전남 나주시 죽림길 26)...2019.03.04

 

 

 

 

 

기념관은 옛날 나주역사 옆에 위치한다.

 

 

 

 

 

나주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당시 나주역에서 나주-광주 간 기차를 이용해 통학하던 한, 일 학생의

충돌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옛 나주역’ 옆에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깨울 수 있도록

전남지역의 식민지적 상황과 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 등을 주제로 2008년 7월 25일 개관하였다.

더불어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된 나주역사도 함께 볼 수 있다.

 

 

 

 

 

32.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광주 서구 학생독립로 30)...2019.03.04

 

 

 

 

 

기념회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기념관으로 향한다.

 

 

 

 

 

우측 기념탑, 좌측 기념관

 

 

 

 

기념관...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곳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정리·연구하고 역사적 사료를 보관·전시하며 당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참배실을 운영한다.

 

 

 

 

 

 

 

 

 

 

 

대지면적 6만 5,837㎡, 건축총면적 2,556.6㎡의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로, 1층은 참배실·

(사)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회의실, 2층은 전시실·영상실·인터넷검색대·휴게실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실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투쟁하였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계승’이라는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한 조선여학생 희롱사건이 불씨가 되어 일어났다.

11월 3일 광주에서 학생들의 항일시위가 벌어졌고, 그 후 학생들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신간회·조선청년총동맹·

조선학생전위동맹 등 사회·청년 단체들이 가세하여 조직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전국적인 항일민족운동으로

발전하여 약 5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5만 4,000여 명이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33.광주백범기념관(광주 동구 학동 역사공원내)...2019.03.04

 

 

 

 

 

백범기념관이 이곳에 새워진 이유는...

해방 후 광주광역시 동구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조국을 떠났다가 귀국한 전재민들이 많이 살았는데

김구 선생은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성금을 기증했다. 당시 서민호 광주부윤(지금의 시장)은 이 기금을

종잣돈 삼아 100세대의 집을 지어 전재민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마을 이름을 ‘100가구가 화목하게 살길

바란다’는 의미로 ‘백화(百和)마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이곳에 아파트가 건립돼 백화마을의

유래가 잊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광주백범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은 2015년 10월 28일 개관하였다.

 

 

 

 

 

번외로 5.18 광주민주항쟁의 최후 격전지인 (구)전남도청(현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임)을 돌아본다.

 

 

 

 

 

34.이종희장군생가(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2019.03.04

 

 

 

 

 

원평장터 기미독립만세운동 기념비

 

 

 

 

 

이곳은 복원된 곳으로 생가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663번지로 복원된 집과는 약 300m 떨어져 있다.

 

 

 

 

 

중국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일본 육군대장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민족혁명당에 입당하고, 조선의용대 활동에도 참여했다. 1943년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광복 때까지 후베이성[]·장시성[西] 등지에서 활동하다 1946년 귀국 도중 사망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35.남강정사(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상신리 65-1 )...2019.03.04

 

 

 

 

 

충신 장태수선생은  고종황제의 선위() 후에 신명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러냈으나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 1910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이 임금에게 불충하고

조상에게 불효한 것이라 생각하여 《자죄문()》을 지어 망국을 자책하는 한편, 단식하여

목숨을 끊고자 하였다. 단식하는 중에 그는 동포에게 주권 회복을 호소하는 《고대한동포문()》을

남겼다. 절식()한 지 27일 만인 1910년 11월 27일 이곳에서 순국하였다.

 

 

 

 

 

조선 순조 초인 1800년경에 장태수의 부친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은 자연석재로 40cm 정도의 축대를

쌓은 후 세운 정면 4칸, 측면 4칸의 초가집이다. 초석은 덤벙주초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모두 네모기둥이다.

평면의 배치는 중앙의 전면 2칸에 폭 133㎝의 마루를 깔고, 가운데에 큰 방을 두었으며, 좌·우로는 툇방과

마루를 꾸몄다.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되었다.

 

 

 

 

 

36.가람이병기선생 생가지 및 기념관(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3019.03.04

 

 

 

 

 

이곳은 국문학자이자 시조 작가인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고 숨을 거둔 곳으로

기념관, 생가, 이병기선생 묘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집은 조선 말기 선비 집안의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고방채, 모정 등이 남아 있으며

행랑채는 근년에 철거되었다. 모정의 앞쪽에는 작은 못을 두 곳에 파놓았다. 본디 초가지붕이며 건물 자체에는

특징이 없으나 안채나 사랑채에서 고풍이 나타나며, 모정과 못을 배치하는 등 조촐한 선비 가옥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1913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조의 현대적 혁신과 부활을 위한 신운동을 전개하며고전의

발굴연구에 힘썼다. 또 청소년의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글과 말을 보존하는 데 노력하였고

이로 인하여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교수하였고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국문학전사』 등의 저서를 남기고

1968년 11월 28일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37.애국지사임병직박사 생가(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253-2)...2019.03.04

 

 

 

 

 

한국 외교관 겸 독립 운동가. 아주순방 친선사절단 단장에 기용되어 아프리카 외교에 크게 공헌했으며,

기계 기능 연구원 명예 이사장을 역임한 후 한국 반공연맹 이사장 겸 세계 반공연맹 ·

아시아 반공연맹 한국지부장에 취임했다.

 

 

 

 

 

임병직[1893년(고종 30) ~ 1976년]박사의  추모비가 생가 인근에 있다.

 

 

 

 

 

 

 

 

 

 

 

부여군에서는 초촌면 그백로 2.85km에 "임병직로"로 명에도로명을 부여했다.

 

 

 

 

 

38.석인 정태진선생기념관(경기도 파주시 금촌동)...2019.03.09

 

 

 

 

 


본관 나주(). 호 석인(). 경기 파주() 출생.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한 후 1927년 미국 우스타대학교

철학과를 거쳐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1931년 함흥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1941년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위원 등을 지낸 후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관련되어 2년 10개월간 복역하였다.

1952년 《큰사전》의 속간을 위해 편찬사업에 힘쓰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정태진 묘》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으며,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다

 

 

 

 

 

 

 

 

 

 

 

39.조소앙선생 본가 및 기념관(경기도 양주시 남면 양연로173번길 87)...2019.03.09

 

 

 

 


조소앙선생은 중국에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노선이자 광복 후의

새로운 국가건설 방략을 제시한 삼균주의를 정립했다. 1919년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헌장기초위원, 심사위원, 임시의정원법기초위원, 초대 국무원비서장, 국무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40년 5월에는 김구의 한국국민당 및 지청천의 조선혁명당과 함께 3당통합을 이루어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창당선언과 정강에서 삼균주의의 정립을 확정시켰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6·25사변으로 1950년 9월 납북되어 1958년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헌법이다.

안보이는 조항으로 제8조는 구황실을 우대한다는 내용이고, 제9조는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폐하며,

제10조에서 임시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년 내에 국회를 소집한다고 규정하였다.

 

 

 

 

 


삼균주의는 조소앙이 독립운동 내부의 좌우익사상을 지양, 종합하여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이다.

 

 

 

 

 

선생 및 형제들의 생가

 

 

 

 


 

 

 

 

 

 

이곳에는 기념관 및 본가, 주차시설 등이 있으며 관리를 잘하여 주변 정돈이 잘 되어 있다. 

 

 

 

 


기념관을 들어서면 만나는 초상화

 

 

 

 

 

선생의 발자취가 연대별로 정리되어 있다.

 

 

 

 

 


철학적 당의 도표...한국독립당의 당의와 기본이념인 삼균주의를 철학적으로 풀어 설명한 글

 

 

 

 

 


기념관 못지않게 홈페이지도 자료관리가 잘 되어 있다.

 

 

 

 

 

한국독립당 창당 기념사진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 환국기념

 

 

 

 


조소앙선생의 가문...형제 및 자손들이 대한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다.

 

 

 

 

 

40.근현대사기념관(서울 강북구 4.19로 114)...2019.03.09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은 헌법정신의 요체인’자유’,’평등’,’민주’의 이념이 단순히 외래의 소산이 아니라

선열들이 피땀 흘려 체득하고 축적해 온 소중한 가치임을 감동이 있는 서사로 전달함으로써,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사월혁명의 투사들이 소원했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상임을 널리 알리고자 설립됐다.

 

 

 

 


방문시간이 입장제한시간인 5시30분을 넘어서 내부관람을 하지 못했다.

관람은 무료이며, 전시는 상설 및 기획전시가 있다.

 

 

 

 

 

3월 16일 북한산둘레길을 걷다가 다시 방문한 근현대사기념관

자랑스러운 독립영웅들의 흉상이 도로 옆으로 길게 서 있다.

 

 

 

 

 

독립민주기념비...흉상은 김구선생이다.

 

 

 

 

 

 

 

 

 

 

 

기념관 외부에는 자유, 평등, 독립, 민주의 네 단어가 조형되어 있다. 

 

 

 

 

 

이번에는 전시시간내 방문이라서 전시관 관람을 한다.

 

 

 

 

 

전시관 줄입구

 

 

 

 

 

1층은 세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조상들은 체구가 작은 편이였으나 순박하며 부지런한 삶을 살았던 민족 같다.

 

 

 

 

 

임시정부의 역사

 

 

 

 

 

독립운동 연대기

 

 

 

 

 

광복이후의 대한민국 역사

 

 

 

 

 

2층에는 초상화로 독립운동가의 모습들이 표현되어 있다.

 

 

 

 

 

요즘 많은 독립운동가를 만나다 보니 익숙한 이름과 얼굴들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