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립

꼭 가 봐야 할 베스트 독립운동 현충시설 100 - 2편(11번~20번)

행복 찾기 2019. 2. 19. 19:29

꼭 가 봐야 할 베스트 독립운동 현충시설 100중 2편으로 11번부터 20번까지이며,

포스팅은 한회당 10곳의 현충시설을 다닐때 까지 보완될 예정이다.

 

독립운동가 분들을 찾아 다니다 보면 의사, 열사 등 여러 호칭이 붙어있다.

전에도 독립운동가의 호칭에 대하여 언급한적이 있는데 참고로 다시 살펴본다.

 

독립운동가의 호칭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면 

의사(義士) - 의로운 지사(志士)라는 뜻으로 의자(義者)라고 쓰이기도 한다.

 

열사(烈士) - 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

 

지사(志士) -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사람.

 

장군(將軍) - 1. 군의 우두머리로 군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무관.

                   2. 장관(將官) 자리의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3. 힘이 아주 센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위 호칭중 의사와 열사는 나라를 위해 돌아가긴 분들로 차이점은 열사는 무력이 아닌 주로 맨손으로 투쟁하신

분들에게 의사는 총이나 포탄 등을 사용하여 무력으로 투쟁한 독립운동가에게 사용되는 말이다.

 

 

 

 

한편 의사와 장군을 같이 사용하지는 않는데 김좌진 장군과 같이 군인 출신에는 의사를 붙이지 않는다.

또한 의사와 열사는 독립운동가가 순국한 뒤 붙일 수 있지만 지사는 살아 있을 때도 쓸 수 있는 단어이다.

 

 

『이러한 '열사'와 '의사'의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의 신문 보도를 참조할 수 있다.

(동아일보 1987년 8월 27일자, 횡설수설)

 

 

......이 '열사'와 '의사'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기준은 10여 년 전 원호처의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독립운동사 편찬을 앞두고 항일 선열들의 공적을 조사할 때 대충 정해졌는데, 직접 행동은 안 했어도

죽음으로 정신적인 저항의 위대성을 보인 분들은 '열사'라고 하고, 주로 무력으로 행동을 통해서 큰 공적을

세운 분들을 '의사'라고 하기로 했다.......』

 

11.윤동주문학관(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9(청운동 3-100))

12.우당기념관(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 6-22번지)

13.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14.김포독립운동기념관(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2로30번길 46)

15.민세 안재홍생가(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계루지1길 7(두릉리 646))

16.안성3·1운동기념관(경기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

17.석오 이동녕선생 기념관(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4길 36)

18.유관순열사 기념관(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19.유관순열사생가지(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338-1)

 

20.조병옥박사생가(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249)

 

 

 

 11.윤동주문학관(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9(청운동 3-100))...2019.02.17

 

 

 

 

 

2012년 7월 25일에 개관하였으며 윤동주()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관이다. 대지는 90㎡ 이며 3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사진자료와 친필원고, 시집, 당시에 발간된 문학잡지 등을 전시하며, 그리고 문학관의

 

가장 독특한 특징인 시인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영상실이 있는데 이 영상실은 물탱크를 재활용하여 만들었다.

 

 

 

 

 

 

 

 

 

 

2013년 1월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건축문화잡지인 월간 스페이스(Space)가 선정한 한국의 현대건축 'Best 20' 중에서 18위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에 선정되었다.

 

 

 

 

 

 

 

 

 

입구 벽면에 새겨진 시...새로운 길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시인이 오르던 인왕산 자락에 '시인의 언덕'이 있다.

 

 

 

 

 

 

 

 

 

창의문 맞은편 길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서울성곽 앞으로 이곳이 윤동주 시인의 언덕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표지석이 있다.

 

 

 

 

 

 

 

 

 

언덕에 서면 남산등 서울전경이 펼쳐진다.

 

 

 

 

 

 

 

 

 

서시

 

 

 

 

 

 

 

 

 

겸재 정선의 장안연우...청와대 뒷산인 백악산(현 북악산)의 풍경이다.

 

 

 

 

 

 

 

 

 

멀리 북한산 능선이 족두리봉부터 비봉을 지나서 문수봉, 보현봉까지 펼쳐졌다.

 

 

 

 

 

 

 

 

 

12.우당기념관(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 6-22번지)...2019.02.17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문 끝에 순국한 이회영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우당은 이회영의 호이다. 1985년 10월 우당기념사업회가 발족하여 1990년 9월 1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92-10번지에 우당기념관을 준공하였고, 2001년 6월 15일 지금의 위치에 

기념관을 신축, 이전하여 개관하였다.

 

 

 

 

 

 

 

 

 

관람시간...휴일에는 휴관이다.

 

 

 

 

 

 

 

 

 

이회영 선생은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방되자 전 재산을 처분해 6형제 40명의 가족을 데리고 중국으로 망명,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35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해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승리에 일조했다.

 

 

 

 

2020.08.18에 재방문한 우당기념관

 

 

 

 

정문을 들어서니 우당 이회영선생의 흉상이 보인다.

 

 

 

 

 

 

 

 

 

우당기념관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우당의 흉상과 낙관,

건국 공로훈장, 백범 일지, 신흥무관학교 교가와 신흥학우단, 친필 편지, 독립운동 활동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우당 기념관은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에 자리한다.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1990년에 개관했다.

 

 

 

 

기념관은 6개의 전시 코너로 구성됐다.

 

 

 

 

육군사관학교 명예졸업증서

요즘 친일파들의 6.25전쟁 참여 전과를 인정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다. 

이회영선생께서 이를 보고 있다면 어찌 생각할련지...

 

 

 

 

우당기념관을 나와서 북한산둘레길을 걷다가 근현대사기념관 앞에서 만난 이시영선생 흉상

이시영선생은 초대부통령으로 이회영선생(네번째)의 6형제중 다섯째이시다.

 

 

 

 

 

 

 

13.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2019.02.16

 

 

 

 

 

 

 

 

 

늦은 시간에 방문하니 문이 닺혔다.

 

이번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3월 1일에 무료 개방을 한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정권과 해방이후 독재정권이 그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서대문형무소’라는

 

감옥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 또 그 권력에 저항한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이자 박물관이다.

 

 

 

 

 

 

 

 

 

역사관은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여 년간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수형시설이었던 ‘서대문형무소’의 옥사 및 

사형장 등을 보존·관리하고 관련 유물 및 자료 등을 전시하여 역사체험의 현장으로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세워졌던 경성감옥()을 시초로 하고 있다. 1908년 개소된 이후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1912년), 서대문형무소(1923년)로 명칭이 몇 차례 바뀌었고 일반적으로 서대문형무소로 통칭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당했던 현장으로 식민지 권력의 대중통제 시설로 

이용되었으며, 독립운동이 치열해 지면서 1920년대 초반 그 규모와 시설이 대규모로 확장되었다.  

 

 

 

 

 

 

 

 

 

이후 1980년대 서울의 도심 팽창으로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1987년)하게 되었다. 

이에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서대문구를 중심으로 보존운동이 

펼쳐져 옥사 일부와 사형장이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를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 체험의 현장으로 조성하고자 

서대문구의 주도로 박물관 조성사업이 추진되어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14.김포독립운동기념관(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2로30번길 46)...2019.02.21

 

 

 

 

 

기념관 앞 마당에 위치한 독립선언서

 

 

 

 

 

김포 독립운동기념관은 1919년 오라니장터 등 김포지역에서 일어났던 3.1독립만세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관람은 10시부터 18시까지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은 휴관이다.

 

 

 

 

 

전시관은 1층에 상설 및 기획전시를 한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태극기를 배경으로 독립선언서가 나타난다.

 

 

 

 

 

안내게시판에는 여러자료가 나라를 생각하게 한다.

 

 

 

 

김포지역의 만세운동을 정리한 전시물

 

 

 

 

 

기념관을 다니면서 알게된 사실은 만세운동이 3.1일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두달 동안이나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나라의 찬탈 및 일제의 탄압을 온 국민들이 성토하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김포의 대표적인 의병장...조선 중기의 위인이다.

 

 

 

 

 

 

 

 

 

15.민세 안재홍생가(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계루지1길 7(두릉리 646))...2019.02.22

 

 

 

 

 

해방을 전후한 시대의 선구자였으며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던 안재홍이 태어나 살던 집이다.

 

 

 

 

 

1992년 12월 31일 경기도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안재홍은 일본 유학시절 학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귀국 후 중앙학교 학감, 조선일보 주필 및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교육활동을 통한 민족계몽과 독립사상 고취에 헌신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8·15광복이 되자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부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미군정기에는 민정장관을 

역임하고, 1950년 평택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중 납북되어 1965년 평양에서 사망하였다.

 

 

 

 

 

고덕지구 공사현장에 덩그러이 놓인 가옥

 

 

 

 

 

아침 이른시간이라 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16.안성3·1운동기념관(경기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2019.02.22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는 태극기가 수놓듯이 늘어서 있다. 

 

 

 

 

 

3·1운동 3대 실력항쟁지로 꼽히는 안성의 원곡·양성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2001년 11월 17일 개관하였다.

 

 

 

 

 

 

 

 

 

 

 

 

 

 

 

 

 

관람은 매일 09:00 - 18:00, 17:00까지 입장 / 1월1일, 설날, 추석 휴관
월요일 휴무이다.

 

 

 

 

 

 

자유를 향한 외침

 

 

 

 

 

만세광장

 

 

 

 

 

전시관...총면적 1,236m², 2층 규모이다.

 

 

 

 

 

땅울림

 

 

 

 

 

안성의 만세운동관련 유물과 기록을 전시하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자료를 실물·모형·영상물로 보여준다.

 

 

 

 

 

 

 

 

 

 

 

2.8독립선언 그리고 3.1운동을 거쳐서 임시정부 수립이 이어진다.

 

 

 

 

 

 

 

안성에서는 만세운동과 함께 실력행사를 하여 일본인을 몰아냈으나...

 

 

 

 

그 해방의 기쁨은 2일로 끝나고 탄압이 이어진다.

 

 

 

 

 

안성주민들은 이 만세운동으로 127명이 기소되어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기념관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많은 행사가 열린다.

 

 

 

 

 

17.석오 이동녕선생 기념관(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4길 36)...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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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석오 이동녕선생 기념관(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4길 36)...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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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류천석 표석의 씌여진 의미는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무슨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1869(고종 6)-1940. 독립운동가. 정치가. 행정가이며. 1906년 북간도 용정촌에서 이상설, 여준 등과 

서전의숙을 설립하였고,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양기탁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1935년에는 한국국민당을 조직하여 당수가 되었다.

 

 

 

 

 

조국광복 후 1948년 사회장으로 봉환식을 거행했고, 효창원에 안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생가 모습

 

 

 

 

 

기념관 전경

 

 

 

 

 

기념관 앞에 있는 안내도

 

 

 

 

 

기념관을 들어서면 만나는 초상화

 

 

 

 

 

1906년 만주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신학문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 운영 등 많은 활동이 있다. 

 

 

 

 

 

석오연보

 

 

 

 

 

기념관을 방문하고서 대한민국이란 정부에 큰 힘을 끼친 선열이라는 것을 알았다.

 

 

 

 

 

 

 

18.유관순열사 기념관(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2019.02.22

 

 

 

 

 

초혼묘방향

 

 

 

 

 

유관순열사유적에는 추모각()과 영정(), 만세부르는 모습의 동상, 안내판 등이 있다.

 

 

 

 

 

만세를 부르는 동상

 

 

 

 

 

유관순 열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3년 4월 1일 건립하였다. 

건평 542.7㎡, 지상 1층·지하 1층 규모로서 팔작지붕을 올린 전통적인 한옥 형태의 건물이다.

 

 

 

 

 

방문한 날에 군인들이 단체관람을 한다. ^^

 

 

 

 

 

전시물은 유관순열사의 일대기와3.1운동에 관한 기록이다.

 

 

 

 

 

만세운동 조형물 및 감옥

 

 

 

 

 

 

 

 

 

19.유관순열사생가지(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338-1)...2019.02.22

 

 

 

 

 

유관순 열사 유적인 생가지()는 봉화지()와 함께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만세운동 당시 일본관헌들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유품 한 점 없이 전소되고 빈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1년 12월 30일 복원하였다.

 

 

 

 

 

 

 

 

 

 

 

 

 

 

 

 

 

만세운동시 사용된 태극기를 만드는 조형물이 놓여있다.

 

 

 

 

 

 

 

 

 

20.조병옥박사생가(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249)...2019.02.22

 

 

 

 

 

유관순열사 생가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894년 3월 21일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 배재학당을 거쳐 평양숭실전문학교를 나와 

미국 콜롬비아대학 졸업 후 귀국 1927년 신간회 조직에 참여하여 광범한 항일 민족전선을 형성하는 운동에 나섰으며, 

1929년 광주학생운동 배후조정혐의로 3년간 옥고를 겪었다. 정부 수립후 1953년 내무부 장관을 지내고 1960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 유세 중 신병으로 미국에서 사망,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단장을 추서하였다.

 

 

 

 

 

1995년 4월 20일 생가를 복원하였으며, 조병옥 박사의 부친(조인원)은 아우내만세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천안시에서는 역사적인 인물들의발자취를 느낄수 있는 역사문화둘레길을 8개코스로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