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문화가 있는 날"에 눈이 쏟아졌다.
11월이 다가도록 날이 포근했는데
첫눈 치고는 많은 눈이 내리면서 풍경이
온통 하얀색으로 변하고 겨울이 왔다.
이렇게 눈이 오면 운치가 있는 고궁은
어떤 모습일까 보고 싶어서 무료관람이
가능한 고궁나들이를 나선다.
일시 : 2024.11.27 수 눈
코스 : 경복궁-창덕궁-창경궁
시청역에 내리니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덕수궁을 찾았으나...
폭설로 관람중지이다.
발걸음을 경복궁으로 돌린다...시청앞 풍경
시청앞 광장에 설치된 성탄 트리
청계광장을 지나고...
세종대로사거리...늠름하신 성웅 이순신장군동상
11월 내내 겨울같지 않은 포근한 날이
이어지다가 겨울을 대표하는 눈이 펑펑 내린다.
세종대왕님도 찍어보고...
경복궁 남문인 광화문
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광화’는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라는 뜻이다. 광화문은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은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은 왕이, 좌우의 홍예문은 왕세자와 신하들이 각각 출입하였다. 또한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두어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1968년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하였고 월대는 2023년 10월 15일에 복원되어 대중에 공개되었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흥례문이 보인다.
많은 관광객이 고궁에서 눈풍경을 즐긴다.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중문으로 ‘흥례’는 ‘예를 일으킨다’라는 뜻이다. 원래 홍례문의 이름은 ‘홍례문’이었으나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흥례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철거되었다가,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후 2001년에 복원하였다.
흥례문을 들어서면 영제교와 근정문이 보인다.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위로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를 놓았다. 영제교는 세종 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때도 큰 훼손 없이 있었다가 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보수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흥례문과 같이 철거되었다가 2001년에 복원하였다.
수목마다 눈꽃이 활짝 피었다.
근정문(勤政門)은 근정전의 정문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우진각지붕의 형태로, 궁궐 정전의 정문 중 유일하게 2층 규모로 지었다. 근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단종, 성종, 명종이 왕위에 올랐다. 근정문은 행각을 포함하여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흥례문방향
근정전(勤政殿)...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의 ‘근정’은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근정전은 2단의 월대 위에 다시 낮은 기단을 두고 그 위로 중층으로 올린 건물로 안에서 보면 층 구분이 없는 통층(通層)이다.
근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은 다른 궁궐의 정전과 같이 박석이 깔려있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조정에는 정1품부터 정9품까지의 품계석을 놓았다.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 기둥에는 4신상과 12지신상을 포함하여 28수 별자리상 등을 간결하지만 재치있게 조각하였다. 내부 바닥은 전돌을 깔았고, 북쪽 가운데에 왕의 자리인 어좌를 설치하였다.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근정전에서는 정종, 세종, 세조, 중종, 선조가 왕위에 올랐으며,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근정문방향
눈이 오니 행각에 사람들이 몰렸다.
근정전 전경
근정전에서 경회루로 향한다.
수정전 뒷편으로 보이는 경회루
경회루(慶會樓)의 ‘경회’는 ‘경사스러운 연회’라는 뜻으로, 경복궁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 정원으로 꾸몄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다시 만들었다. 성종과 연산군 대에 수리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중건하였다.
경회루의 1층은 48개(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 각 24개)의 높은 돌기둥들만 세웠으며, 2층에 마루를 깔아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추녀마루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신상神像의 모습으로 만들어 얹은 장식 기와)이 있다. 경회루는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경회루를 지나서 향원정으로 걷는다.
향원정...고종이 건청궁에 기거하던 1867년 경회루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그 중앙에 지은 것이다.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 다리를 놓아 취향교라 했는데, 이 다리는 6·25전쟁 때 파괴되고 현재의 다리는 1953년 남쪽에 새로 놓은 것이다. 정자는 정육각형으로 장대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의 초석을 놓고 그 위에 1·2층을 관통하는 육각기둥을 세웠다. 1층에는 평난간을, 2층에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다. 겹처마이며,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지붕의 중앙에 절병통을 얹어 치장했다.
하얀 눈꽃을 피어낸 소나무
쌓이는 눈을 못 이기고 부러지기도 한다.
경복궁에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이동한다.
하얀 눈모자를 쓴 돌하루방
창덕궁 가는 길
창덕궁을 들어서자 고목이 반긴다.
금천교를 지나서 진선문으로 입장한다.
금천교(錦川橋)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진선문(進善門)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 즉 금천(禁川) 위에 세운 돌다리이다. 금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돈화문 동쪽 궐 밖으로 빠져나간다.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년(태종 11)에 조성되어 현재까지 잘 남아있는 돌다리로, 현존하는 궁궐의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 규모는 길이 12.9m, 너비 12.5m로, 전체적인 구조는 홍예(虹蜺, 무지개 모양) 2개를 받치고 그 위에는 장대석 모양의 멍에돌(駕石)을 얹었다. 다리 옆면 홍예 사이의 벽에는 귀면(鬼面)을 새겼고, 그 아래쪽 두 홍예 가운데에는 남쪽에는 해태로 추정되는 석상, 북쪽에는 거북이를 닮은 석상을 배치하였다. 금천교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진선문을 들어서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좌측이 인정전으로 이어지는 인정문이다.
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인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인정문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인정’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다. 인정전은 창덕궁이 창건될 때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 18)에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군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다음 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인정전은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전각으로 지어졌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이 없어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내부 바닥은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마루는 전등, 커튼, 유리창문 등과 함께 1908년(융희 2)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은 다른 궁궐의 정전과 같이 박석이 깔려 있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조정에는 품계석을 놓았다. 인정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외행각 일부는 1991년 이후에 복원하였다.
어느 전각의 내부
숙장문을 지나면 넓은 터가 나온다.
쌓인 눈으로 여러곳에서 부러진 소나무
인정전방향
낙선재 일원
낙선재 일원은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1847년(헌종 13)에 창경궁 낙선당 터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석복’ : 복을 내려줌)과 수강재(壽康齋, ‘수강’ : 오래 살고 건강함)를 지었다. 낙선재의 ‘낙선’은 ‘선을 즐긴다’라는 뜻으로,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황후 김씨(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낙선재 일원은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고, 낙선재 뒤로는 후원을 만들었다. 건물과 후원 사이에는 작은 석축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화초를 심었고, 그 사이사이에 세련된 굴뚝과 괴석들을 배열했다. 궁궐의 품격과 여인의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정원이다.
특히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낙선재로 입장한다.
철모르는 꽃이 눈을 만났다.
멋진 소나무들이 부러지면서 굉음을 낸다.
폭설로 창경궁과 연결된 함양문을 차단하여 다시 돌아간다.
이제 눈이 그치고 파란하늘이 나타난다.
돈화문과 눈꽃 그리고 파란하늘
돈화문은 수리중이라 출입이 안된다.
율곡터널 위를 걸어서 창경궁으로 향한다.
종묘와 창경궁을 연결하는 율곡터널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 도착
보물 제384호. 1484년에 건립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16년에 중건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 건물로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비슷한 모습이다. 원래 석조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초석을 놓았는데 현재 기단 부분은 땅에 묻혀 있다. 다듬은 돌 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앞과 뒤쪽은 평주이고, 문짝을 단 중앙기둥은 아래·위층을 연결하는 높은 기둥이다. 2층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앞뒤 양옆에 창문을 내어 사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했다. 공포의 짜임은 다포식으로 외2출목·내3출목이며, 쇠서는 날카로운 앙서로 되어 있고 안쪽은 교두형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했으며, 그 위에 치미·용두·잡상을 늘어놓아 장식했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옥천교와 명전문이 보인다.
창경궁 옥천교(玉川橋)는 창경궁(昌慶宮)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안쪽 명당수(明堂水)가 흐르는 어구(御溝: 대궐에서 흘러나오는 개천) 위에 설치한 돌다리로, 1483년(성종 14)에 세워졌다.
옥천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홍화문 앞을 흐르는 금천(禁川)인 옥류천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돌다리로, 당시 의정부 좌찬성이었던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명칭이다. 다리의 길이는 9.9m이고 너비는 6.6m이며,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인 명정전의 대문인 명정문 사이에 있다.
명정문 및 명전전...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정문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명정문은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상에 정확히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다. 명정문은 명정전과 함께 처음 지어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대에 다시 지었다. 행각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하였다. 명정문 및 행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명정전(明政殿)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명정’은 ‘정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었는데, 현재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은 중층 규모이지만 명정전은 단층으로 지어졌다. 이는 창경궁이 정치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명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에는 박석을 깔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다. 조정에는 품계석이 있는데, 조회나 행사 때 문무백관들이 품계석에 새겨진 각자의 품계에 맞춰 국왕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무신, 좌측에는 문신이 선다. 또한 삼도 가운데 중앙에 있는 어도는 국왕이 이동하는 길이다. 명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가운데 있는 경사진 돌을 답도라 하는데 그 위로 국왕이 탄 가마가 지나갔다. 명정전은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명전전 내부
천장에는 봉황이 새겨져있다.
명정전을 지나자 멀리 N서울타워가 보인다.
창덕궁 낙선재과 연결된 담벼락
환경전 부근의 전각들
춘당지...이곳이후는 출입이 통제되었다.
춘당지(春塘池)는 현재 두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원래는 뒤쪽의 작은 연못이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본래의 춘당지이다. 본래의 춘당지 앞쪽 큰 연못은 원래 왕이 몸소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내농포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왕이 직접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논을 가는 시범을 보임으로써 풍년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할 때 이 자리에 연못을 파서 유원지로 만들었다. 이후 1986년 창경궁 복원 때 춘당지 가운데에 섬을 조성하여 우리나라 전통양식에 가깝게 다시 조성하였다.
11월 내내 포근한 날이 이어져서 미쳐 단풍이
들기전에 갑자기 눈폭탄을 맞은 수목들
파란하늘은 사라지고 먹구름이 낀 하늘
눈이 온 날에 고궁은 처음 가 보았는데
나무에 핀 눈꽃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너무 많은 눈이 내려서 폭설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고궁에서 멋진 정취를 즐긴 나들이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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