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나들이

2025년 몽골 4박 5일 넷째날 : 이태준선생 기념공원-불교사원-테르지공원

행복 찾기 2025. 9. 5. 08:59

2025년 몽골 4박 5일중 넷째날은 테르지공원 방문이다.
 
먼저 숙소를 출발하면서 울란바토르의 이태준선생
기념공원을 들리고 불교사원(울란 샹 나몬 사원)을 방문한다.

 

4박 5일의 몽골여행중 절반을 지나면서 느낀 것은
일정이 여유로워서 다소 한가한 기분도 든다.
 
몽골 볼거리를 크게 보면 사막여행 등 오지탐험과
수도인 울란바토르 및 테르지 관광 등 세분류이다.
 
세곳중 마지막 볼거리인 테르지공원으로 향하면서  
몽골 여정의 발길을 이어간다.
 
 
일시 : 2025.07.31 목 맑음
코스 : 이태준선생 기념공원-불교사원 (울란 샹 나몬 사원)-테르지공원
 
 
 
 
울란바토르 전경

 
 
 
 
간선도로인지 도로가 뻥 뚫렸다. 

 
 
 
 
울란바토르는 차량정체가 심한 곳인데
이 도로는 여유가 많다. 

 
 
 
 
낙타 조형물이 몽골의 특징을 알려준다.

 
 
 
 
몽골 왕조의 사당도 지나고...

 
 
 
 
울란바토르를 지나는 툴강

 
 
 
 
툴강(Туул гол)은 몽골 중부와 북부에 있는 강이다. 몽골인에게 툴강은 신성하기에 하탄 툴(Хатан Туул, 여왕 툴)이라고도 불린다. 투브주 북동부에서 발원하여 울란바토르를 거쳤다가 셀렝게주에서 셀렝게강과 합류하는 툴강은 길이 882.8km, 유역 넓이는 49,840km2다. 몽골비사에는 옹 칸의 궁전이 있는 곳이 '툴강의 검은 숲'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첫날 밤에 오른 자이스전승 기념탑이 산 위에 보인다.

 
 
 
 
당겨보고...

 
 
 
 
기념탑을 마주하고 이태준선생 기념공원이 있다.

 
 
 
 
입구 도착...몽골의 강남답게 차가 꽉 막혔다.

 
 
 
 
이태준(李泰俊, 1883~1921)선생은 몽골에서 혁명운동에 참여한 인물로서 한국독립운동사 뿐만 아니라 한국근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태준은 몽골국왕(Bogd Khan)으로부터 제1급 관리등급의 국가훈장인 '에르데니-인 오치르'('금강석'이란 뜻)를 수여받은 인물로 오늘날 한․몽 친선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태준은 또한 1921년 2월초 몽골을 침범하여 살육과 노략질로 공포와 광란의 폭압정치를 실시한 러시아 백위파 대장 운게른 스테른베르그(Roman von Ungern-Sternberg, 1885~1921) 부대에게 학살당한 비운의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러시아 역사학자인 쿠즈민(S.L. Kyz'min)의 「Baron Ungern v Dokumentakh i Memuarakh(Baron Ungern in Documents and Memoirs)」(모스크바, 2004)에는 러시아백위파 운게른 스테른베르그 부대가 고륜(庫倫, 몽골어로는 Hüree. 러시아인들은 Urga라고 불렀고, 혁명이후 '붉은 영웅의 도시'라는 뜻의 Ulaan Bataar로 개칭됨)을 점령한 직후, 이태준을 처형하게 되는 최후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한 마케예프(A.S. Makeev)의 회상록이 수록되어 있다. 마케예프는 '아시아 기마사단(Asian Cavalry Division)'으로 불렸던 부대의 사령관 즉, 운게른의 부관을 지낸 인물이다.

 
 
 
 
2001년 7월 이태준 기념공원의 준공이 거행되었다. 기념공원 역시 바로 자이승 전망대가 위치한 구릉에서 울란바토르 시내방향의 왼쪽 평지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 지점은 자이승 전망대와 몽골국왕 보그드 칸의 고궁 사이의 요지에 위치해 있다. 이태준 기념공원은 연세대 의대 의사학과와 몽골연세친선병원, 그리고 한국주재 몽골대사관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우선 기념공원의 조성을 위해 몽골정부가 부지 2천 2백 평을 제공하였고, 연세대 의대동창회가 비용을 조달하였다

 
 
 
 
2010년에는 몽골대사관(대사 정일)의 주도로 기념관이 건립되었고 몽골정부, 현지 한인회, 한국대사관측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이태준기념공원 보존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곳은 몽골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의 단골코스가 되었다. 이를 통해 조국광복을 위해 항일운동의 최전선에 활동하였던 이태준이 한․몽친선의 상징적 인물로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태준의 자(字)는 원일(元一)이고, 호는 대암(大岩)이다. 몽골정부의 공식문서에는 “고려국 국적민 의사 리다인’으로 나오는데 ‘다인’은 이태준의 호인 ‘대암’을 몽골어로 표기한 것이다. 당시 이태준이 본명 대신에 호인 ‘대암’을 사용했고, 몽골에서도 그렇게 통용되었다.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이태준은 2형제의 장남으로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다. 이태준의 부인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사망하여 두 딸은 그의 동생(이태식)이 맡아 길렀다. 이태준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다. 이태준은 24세인 1907년 10월 1일에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하였고, 약 3년 9개월만인 1911년 6월 21일에 졸업하였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태준은 세브란스의학교 재학시절 안창호(安昌浩, 1878~1938)의 권유로 비밀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가담하였다. 안창호는 1909년 10월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직후 이갑, 이종호, 김구, 김명제, 임치정 등 서북인사들과 함께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었다가 1910년 2월 20일경에 석방된 후 세브란스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때 안창호가 최남선에게 이태준을 추천하여 신민회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신민회는 한말 애국계몽운동단체들 가운데 공화주의적 정치 이념을 취하고 있던 인사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체였고, 그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 역시 진취적인 젊은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세브란스의학교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하여 기독교와 서구적 사상을 접하게 된 이태준이 청년학우회에 참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규식이 몽골에서 수행할 임무라 한 것은 몽골지방에 비밀군관학교 설립 계획을 말한다. 김규식과 이태준의 몽골 행에는 후일 비행사가 되는 서왈보(徐曰甫)라는 애국청년이 동행했다. 김규식, 이태준, 서왈보의 계획은 한국의 지하조직에서 약속한 자금이 도착하지 않아 포기하여야 했다. 결국 1914년 가을 김규식은 서양인 상사들에게 피혁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이태준은 고륜에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개업했다. 김규식은 1918년 5월경 앤더슨 마이어(Anderson Myer) 회사의 지점 개설을 위해 고륜으로 오게 되는데, 이태준은 김규식을 따라 온 그의 사촌여동생 김은식(金恩植)과 결혼하게 된다. 라마교의 영향이 커서 병에 걸리면 기도나 드리고 주문이나 외우고 미신적인 치료법만을 알고 있던 몽골인들에게 근대적 의술을 펼친 이태준의 성가는 매우 높았다. 이태준은 몽골왕궁에 출입하게 되었고 몽골 활불(活佛), 즉 보그드 칸(Bogd Khan)의 어의(御醫)가 되는 등 몽골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이태준이 피살된 지 9개월 후인 1921년 11월 고륜을 방문했던 여운형은 '중앙'에 기고한 「몽고사막여행기」(1936년 5월)에서, 몽골인들의 7, 8할이 감염되었던 화류병(花柳病)의 절멸에 지대한 공헌을 함으로써, ‘까우리(高麗)의사’ 이태준은 고륜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몽골인들의 이태준에 대한 존경심은 ‘신인(神人)’이나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來佛)’을 대하듯 했다고 한다. 한편, 이태준은 당시 몽골에 주둔하고 있던 중국군 사령관 세 명 가운데 하나인 가오 시린(Gao Silin)의 주치의로도 활약했다.

 
 
 
 
1919년 7월 몽골국왕인 보그드 칸(Bogd Khan)은 이태준에게 국가훈장을 수여하였다. 이 국가훈장은 ‘귀중한 금강석’이란 뜻을 가진 ’에르데니-인 오치르’라는 명칭의 훈장으로써 제1등급에 해당하는 훈장이었다. 이는 몽골정부가 근대의술을 몽골인들에게 널리 베푼 이태준의 ”박시제중(博施濟衆)한 위공(偉功)“을 인정한 때문이었다. 이태준이 훈장을 받은 사실은 이태준이 상해에 머물고 있던 당시 1919년 11월 11일자『독립신문』기사에 보도됨으로써 한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태준의 묘는 현재 몽골 여행객들의 단골 코스인 자이승전망대, 즉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물이 있는 구릉의 서북쪽 경사지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자이승전망대로 올라가는 도로건설 과정에서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운형의 여행기에서 “간소한 [이태준의] 묘지”가 위치했던 “벌거벗은 산비탈을 빈약한 왜림(倭林)이 이곳저곳을 덮고 있는 경사지의 한복판”이라고 묘사한 그곳이다. 몽골정부는 이태준의 묘를 찾기 위해 정부기록보존소를 뒤지고, TV광고 등을 대대적을 전개하였으나 아직까지 묘를 찾지 못하였다.

 
 
 
 
이제 우리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고난에 찬 노력이 아시아 깊숙한 내륙지방 몽골까지 미쳤으며, 아시아대륙에서의 역동적인 역사적 격류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추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또한 과거의 독립운동이 단순한 일본에 대한 항일운동의 차원에서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적 인간 사랑을 실천하고 국제친선에 성공했던 국제화의 선구였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태준의 짧고 극적인 일대기는 일제시기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것 같다. 여운형은 1921년 가을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러시아로 가던 중 고륜에 체류하게 되었다. 이 때 몽골인들이 성산(聖山)으로 부르던 고륜의 남산(南山) 건너편 구릉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던 이태준의 묘를 찾았다. 여운형은 앞서 소개한 「몽고사막 여행기」에서 “이 땅에 있는 오직 하나의 이 조선 사람의 무덤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하야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청년의 거룩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였다”라고 이태준을 애도했다. 여운형의 여행기는 이태준의 묘가 있었던 사실과 그 위치를 전해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기념공원을 뒤로 하고 테르지공원으로 향한다.

 
 
 
 
몽골 대통령 궁이라는 곳도 지나고...

 
 
 
 
 

 
 
 
 
마트를 들려서 필요물품을 구매한다. 

 
 
 
 
의외로 대형마트로 물품도 손색이 없는 곳으로
테르지공원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다.

 
 
 
 
불교사원 도착
울란 샹 나몽 사원(Улаан Шан Намын хийд, Ulan Shang Namon Monastery)은 몽골 날라흐 지역에 위치하여 날라흐 사원(Nalaikh Monastery)이라고도 불리운다.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몽골의 주요 사원으로, 사찰 내부는 금색과 빨간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불상, 마니차, 벽화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몽골식, 티베트식, 중국식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특히 티베트 불교의 특징인 마니차가 특징적이고, 몽골에서만 볼 수 있는 약탄기를 든 여성 보살상도 볼 수 있습니다.

 
 
 
 
건축양식은 몽골, 티베트, 중국식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티베트식 사원은 2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사천왕도 보이고...

 
 
 
 
 

 
 
 
 
천장의 그림이 상쾌하다.

 
 
 
 
 

 
 
 
 
역사적으로 몽골 불교 활동과 의식이 이루어진 중심지이며, 불교 수행과 명상의 장소 역할을 했다.

 
 
 
 
 

 
 
 
 
여성 보살상...약탄기를 든 여성 보살상은 몽골에서만 볼 수 있으며, 어머니와 같은 자비로운 모습으로 사업 번창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마니차...티베트 불교의 상징인 원통형 불교 도구로, 만트라가 새겨져 있으며,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업보를 얻는다고 합니다.

 
 
 
 
 

 
 
 
 
 

 
 
 
 
동네아이와 얘기하는 옆지기

 
 
 
 
말이 통하나?

 
 
 
 
 

 
 
 
 
아이들과 작별하며 절을 나선다.

 
 
 
 
테르지공원 도착

 
 
 
 
 

 
 
 
 
바위산에 둘러쌓인 테르지공원

 
 
 
 
넓은 초원과 산들이 잘 어울린 풍경이다.

 
 
 
 
 

 
 
 
 
곳곳에 게르와 민박촌이 산재해 있다.

 
 
 
 
말타는 곳에 도착

 
 
 
 
낙타는 못 타도 말은 타겠다는 옆지기

 
 
 
 
잠시 승마장을 돌아본다.

 
 
 
 
 

 
 
 
 
 

 
 
 
 
 

 
 
 
 
파란하늘에 흰구름 그리고 이어진 멋진 산 풍경

 
 
 
 
 

 
 
 
 
 

 
 
 
 
독수리인지 매인지 새가 창공을 가른다.

 
 
 
 
묶여있는 매가 보인다. 

 
 
 
 
 

 
 
 
 
사정거리를 벗어나서 바라본다.

 
 
 
 
과감하게 손가락질을 하는 옆지기

 
 
 
초록풀밭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야생화 천지다.

 
 
 
 
솜다리계열...에델바이스라고도 불린다.
설악산 공룡능선에서나 볼수 있는 귀한 꽃인데
이곳에서는 발아래에 널렸다.

 
 
 
 
이름모를 야생화

 
 
 
 
산부추?

 
 
 
 
 

 
 
 
 
멋진 암릉이 둘러싼 테르지공원

 
 
 
 
 

 
 
 
 
 

 
 
 
 
이제 말을 탈 준비를 한다.

 
 
 
 
나갔던 말이 돌아오고...

 
 
 
 
겁 먹은 옆지기

 
 
 
 
 

 
 
 
 
잠시후 안전을 찾고...^^

 
 
 
 
브이...^^

 
 
 
 
 

 
 
 
 
줄을 서시오

 
 
 
 
손 들지 말고...;;

 
 
 
 
 

 
 
 
 
 

 
 
 
 
출발

 
 
 
 
 

 
 
 
 
 

 
 
 
 
 

 
 
 
 
20분 정도 갔다가 돌아오는 옆지기

 
 
 
 
나름 재미있었는듯 하다.

 
 
 
 
 

 
 
 
 
 

 
 
 
 
테르지공원은 어디를 둘러봐도 풍경이 그림같다. 

 
 
 
 
 

 
 
 
 
 

 
 
 
 
 

 
 
 
 
울산바위 느낌도 나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한다.

 
 
 
 
삼겹살집 도착

 
 
 
 
 

 
 
 
 
음식점 옆에 멋진 바위가 있다.

 
 
 
 
 

 
 
 
 
음식점 문지기

 
 
 
 
맛있는 삼겹살 점심식사를 마치고 야리야발사원을 향한다.

 
 
 
 
 

 
 
 
 
짓다만 건물들이 풍경을 어지럽힌다. 
관광지 마다 무분별한 개발은 어딜 가도 비슷하지만
테르지공원의 멋진 풍경들이 손상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