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나들이

서울 도심 한바퀴...사직동 - 경복궁 - 서울역

행복 찾기 2017. 5. 5. 18:23

서울 도심을 가볍게 산책한다.

사직동에서 경복궁을 거쳐 서울역에서 마무리한다.


가 보고 싶었던 필운대도 찾아보고 박물관도 가 보고 서울역 야경도 구경한다.

지난 년말부터 이어진 어수선 했던 광화문광장은 평온이 흐른다.

대한민국의 한획을 그엇던 큰 물줄기가 흐렀던 곳 치고는 너무나 평온하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단계 높아진 국격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

그 길을 쭉 이어가기를 바라며 도심속을 걷는다.



일시 : 2017.03.05 일

코스 : 사직동 - 경복궁 - 서울역




배화여고 생활관

 

 

 


 


 

 


생활관을 끼고 배화여고 뒤로 돌아가면...

 

 

 


필운대가 있다.

 

배화여고 후정에 큰 바위가 실재, 그 좌측에 ‘필운대’(弼雲臺)란 석 자의 석각자가 있고, 중간에 제명이 있고, 우측에 감동명이 각각 열거되어 있다. 필운대의 ‘필운’ 2자는 선조 때 대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선정되었던 경주인 이항복의 호이고, 나머지 ‘대’ 1자는 누각 또는 집을 지칭하는 복합어이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제명은 고종 10년(1889)에 월성 이유원이 지은 것이다. 우측에 있는 감동명은 동추 박효관 외 9명이 열기되어 있다. 이 중에서 주시되고 있는 것은 제명이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할아버지 옛날 살던 집에 후손이 찾아왔는데, 푸른 석벽에는 흰 구름이 깊이 잠겼도다. 끼쳐진 풍속이 백년토록 오래 전했으니, 부노들의 의관이 이제까지 흘려 내려왔도다.”

‘필운대’라는 글씨는 이항복의 글씨가 아닌 19세기의 글씨로 추정되지만 제명과 감동명의 글씨와 함께 이항복가 유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제명은 이항복의 후손인 이유원의 1889년작 글씨가 분명하며, 필운대 또한 이 제명과 비교해보면 이유원의 글씨로 추정된다. 감동명은 제명보다 앞서 19세기(1873년 또는 1813년) 때 필운대 구거의 수축과 관련 있는 명문으로 추정된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나는데 민주주의 관련한 벽보가 있다.

 

 

 


친구는 이순신장군을 존경한다.

 

 

 


대한민국 역사의 큰 물줄기가 흘렀던 광화문광장

 

 

 


경복궁내 국립고궁박물관도 가 보고...

 

 

 


경회루 연못에서 출토된 용

 

 

 


 


 

 


지붕을 장식하는 잡상

 

 


 

 

 

 


동궐도(창덕궁 및 창경궁 전경)

 

 

 


 

 

 

 


경복궁을 나와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 한컷

 

 

 


 

 

 

 


연합뉴스 앞에 있는 조각품

 

 

 


김경민 作 (안녕하세요! 연합뉴스입니다.)

 

 

 


마무리는 서울역 야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