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나들이

함양 화림동 계곡 : 거연정 - 농월정 - 동호정

행복 찾기 2021. 6. 9. 07:54

백두대간의 백운산 산행후에 명승지 제 86호인 함양 화림동계곡을 둘러본다.

꽃과 나무가 무리지어 피고 자라는' 계곡이란 뜻의 화림동()계곡은 29번 국도를 타고 가다고 도로변에 위치한

화림계곡 선비문화 탐방의 안내판을 보고 운좋게 화림동계곡을 볼수 있었다.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 - 서하를 흘러내리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에 이른다. 가히 우리나라의 정자문화의 메카라고 불리어지는 곳 답게 '팔담팔정(八潭八亭)’의

고장으로 부르며,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여덟이라는 숫자는 어디라고 특정하기 힘들 정로도 두루 경관이 빼어나다는 수사로 해석되며, 함양에서는 팔담팔정보다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는 표현을 더 강조한다. ‘안의삼동(安義三洞)’은 안의현의 경치 좋은 3개 골짜기를 일컫으며,

동천(洞天)은 도교적 이상향이다. 세상사 시름 잊고 유유자적하는 곳, 마음에 평화를 주는 안식처다.

삼동의 첫 번째는 이곳 화림동이요, 두 번째는 기백산 자락의 심진동, 마지막은 거창의 명승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이다.

 

계곡을 따라서 많은 정자가 놓여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이인좌의 난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안의현은 조선 후기까지 함양 북동(안의·서상·서하면)과 거창 서북(북상·위천·마리면) 일대를 포괄하는

독립된 행정 단위였다. 그러나 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해체돼 함양과 거창으로 분리된다. 이인좌와 함께 반란을

주도한 정희량의 고향이 바로 안의였기 때문이다. 역적의 고향 안의의 유생들은 이때부터 벼슬길이 막히고,

자연을 벗 삼아 공부밖에 할 일이 없었으니, 경치 좋은 계곡마다 정자가 들어섰다는 게 안의삼동에 대한 해석이다.

(출처 : 한국일보 자박자박 소읍탐방)

 

계곡길은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 6km가 이어져 표시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정자만 살짝 돌아보았다. ^^

 

 

일시 : 2021.06.05 토

코스 : 거연정 - 농월정 - 동호정

 

 

 

 

국도변에 위치한 화림동표석

 

 

 

 

거연정 및 농월정구간 안내판

 

 

 

 

 

 

 

 

 

거연정 전경

 

 

 

 

정선 전씨 입향조이자 조선 중기의 학자인 전시서가 은거하며 억새로 만든 정자를 후손들이 재건했다.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에 등장하는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땄다. 물과 돌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측의 교량이 국도와 연결되어 있다.

교량 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계곡을 건너서 거연정으로 가본다.

 

 

 

 

 

 

 

 

암반이 살짝 거칠지만 조심조심 발길을 옮긴다.

 

 

 

 

 

 

 

 

 

소나무가 감싼 정자를 사이에 두고 맑은 물이 흐르는데, 한쪽은 거친 바위에 갇혀 작은 연못을 이루었다.

정자로 연결한 둥그런 다리가 수면에 비쳐 잔잔한 운치를 더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 임헌회는 ‘거연정 기문’에서

“영남의 명승 중에서 안의삼동이 가장 빼어나고, 그중에서도 화림동이 최고이며, 화림동에서도 거연정이 단연

으뜸”이라고 평했다.

 

 

 

 

 

 

 

 

 

 

 

 

 

 

 

 

 

 

 

거연정을 지나서 국도로 나오니 안내간판이 즐비하다.

 

 

 

 

 

 

 

 

 

교량에서 본 거연정 전경

 

 

 

 

 

 

 

 

 

거연정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 걸어본다.

 

 

 

 

계곡을 따라 10분정도 내려가서 만난 영귀정

계곡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며 관리가 잘 안되어 풍경이 살짝 아쉽다.

 

 

 

 

거연정에서 차를 타고 농월정으로 이동

 

 

 

 

농월정 입구는 국민관광단지로 넓은 주차장이 있다.

 

 

 

 

 

 

 

 

 

국민관광단지 입구에서 농월정까지는 조금 걸어야 한다.

 

 

 

 

교량을 지나서 오르막을 조금 오르면 소나무 숲길이 나오고 농월정을 만날수 있다.

 

 

 

 

농월정이라는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밤이면 달빛이 물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농월정 앞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반석을 달바위라고 부르는데, 바위 면적이 정자를 중심으로 1,000여 평 된다.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 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강화를 반대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시회를 열고 세월을 낚았다는 곳이다. 정자는 2003년 10월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2015년에 함양군에서 기록사진과 도면 등을 바탕으로 옛 모습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복원하였다.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낙향해 1637년 처음 초가로 건립된 이후 몇 차례 중건을 거쳐 1899년 완성된 이 정자는

기둥이 물에 잠겨도 썩지 않는 밤나무로 12지주를 만들었고, 상판만 소나무다. 

 

 

 

 

화림동 계곡에서, 달을 담고 있는 작은 웅덩이를 만든 월연암을 내려다보며 세워진 농월정(弄月亭)은 정자의 백미이자

선비문화의 상징이다. 농월정 앞에 흐르는 물이 비단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사람들은 비단 錦 내 川, 錦川이라 불렀다.

 

 

 

 

안음()의 월연() 위에 농월정()이 있으니 옛날 판서를 지낸 지족당()선생이 지은 정자이다. .... 연못 위의 밝은 달은 무진장()이라 가져도 다 함이 없으니 읊고 희롱함을 게을리 하지 않으리니 아! 달이 사람인가

사람이 달인가! 저 바다 밑에서 나오는 기상을 완연히 보고 천심()에 이르니 맑은 의미를 얻었을 것이다.

- 장복추()의 <농월정중건기()> 중에서

 

 

 

 

농월정 앞에는 ‘화림동 월연암( )’, 정자 옆에는 ‘지족당장구지소()’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다음날 육십령으로 가다가 둘러본 동호정

 

 

 

 

도로변에 위치해 있는데 내려가는 길에 금계국이 가득하다.

 

 

 

 

 

 

 

 

 

동호정은 거연정에서 1.5km 떨어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5년 건립한 정자다. 1936년 중수를 거쳤지만 기본 골격은 그대로여서 화림동 정자 중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가장 크다. 

 

 

 

 

 

 

 

 

 

정자 바로 앞에 널찍한 암반이 있고 옥색 물빛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그만이다.

정자 앞 계곡에는 길이와 폭이 엄청나게 큰 암반이 섬처럼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 이 큰 너럭바위의 이름은

차일암()이며, 너른 암반에는 노래 부르는 장소, 악기를 연주하는 곳, 술을 마시며 즐기던 곳이 따로

있었다니 풍류의 멋이 깃든 곳이다. 

 

 

 

 

암반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보인다.

 

 

 

 

 

 

 

 

 

화림동 계곡의 대표적인 정자를 몇군데 둘러보았는데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계곡길도 걸어볼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