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나들이

서유럽여행기 7-1 : 여섯째날 프랑스 루부르박물관

행복 찾기 2018. 11. 28. 22:51

드디어 스위스를 출발하여 유럽여행 마지막 여정인 프랑스로 떠난다. ^^

새벽부터 서둘러서 바삐 움직여 프랑스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프랑스는 1박 2일의 일정이 있으며 첫날은 루부르박물관, 에펠탑, 파리야경을 보았고

둘째날은 베르사유궁전을 관람한 후에 귀국하는 일정이다.

 

파리도 이탈리아 로마 못지 않게 볼거리가 가득한 도시이며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궁전은 짧은 시간에 접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책속에서 보던 것들을 느껴본 즐거운 날들이다. ^^  

 

 

 

일시 : 2018.03.16 금

코스 : 루브루박물관

 

 

 

프랑스 벨포르에서 고속열차 T.G.V 탑승...08:06 

 






 

 

 

파리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프랑스도 땅이 넓다 보니 창밖으로 평원이 펼쳐진다.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고...

 

 

 

 

파리도착...점심장소로 이동하면서 바라다 본 창밖 풍경...11:05

바스티유광장...프랑스대혁명의 당시 희생자를 기념하는 7월 혁명 기념비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달팽이요리...맛은 그저 그렇다. ^^

 

 

 

 

루브르박물관 도착...12:30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 박물관, 바티칸시티의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1190년 지어졌을 당시에는 요새에 불과했지만 16세기 중반 왕궁으로 재건축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1793년 궁전 일부가 중앙 미술관으로 사용되면서 루브르는 궁전의 틀을 벗고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서 박물관이 길게 이어진다.

 

 

 

 

유리피라미드...다빈치코드를 읽을때 자세한 설명으로 머리 속에 그려졌던 공간인데 와 보게 되었다. ^^

1989년 중국 출생의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가 설계하여 제작되었고 세 개의 피라미드로 구성된 것으로,

외부로 솟은 거대한 피라미드는 입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하 공간 안으로 빛이 잘 비춰질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분수와 연못과 함께, 미술관에 보다 현대적인 분위기를 부여하고 프랑스식 정원 설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카루젤 개선문을 배경으로...

나폴레옹 1세가 오스테를리츠 전투를 비롯한 전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1806~1808년에 세운 개선문이다.

이 개선문은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는데 하얗고 빨간 8개의 대리석 기둥

위에는 나폴레옹 군대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개선문이 세워질 당시에는 문 위에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가져온 4마리 청동말이 장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1815년 다시 베네치아로 반환하고,

지금은 청동말을 이끄는 승리의 여신과 황금색의 두 여신상이 장식되어 있다.

완성된 개선문을 본 나폴레옹은 규모가 너무 작다고 다시 건축하라는 명을 내렸고 그렇게 다시 만들어진

개선문이 바로 샹젤리제에 있는 개선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튈르리 공원으로 이어지는 출구에 위치한

이 문은, 샹젤리제 거리 끝에 위치한 개선문(Arc de Triomphe)과 라 데팡스에 있는

신 개선문(Grande Arche de la Défense)과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루브르는 2017년 연간 810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한 방문자 기준 세계 최고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이 일반인들에 공개하고 있는 3만 8천점의 회화와 조각품 등 보물을 제대로 보려면 한 달도 부족한데,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30여만 점 가운데 고작 10분의 1만 공개하고 있을 뿐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다. 왕이나 제후에게만 국한되었던 루브르에 최초로 일반인들의 입장이

허용된 것은 1793년 8월 10일, 평등정신 덕분이었다.

 

 

 

 

루이 14세의 동상...태양왕으로 불리며, 72년간 재위하면서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었다.

 

 

 

 

"짐이 국가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역사학계에서 이는 정적들이 퍼트린 헛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루브르 한바퀴...^^


 

 


 

루브르 박물관의 대전환점을 가져다 준 사람은 나폴레옹이라 한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이 침략에 의한 약탈물이기에 루브르박물관의 전시물은 논란이 많다.

 











 

 

 

 

드디어 입장...12:59

루브르 박물관 건물은 ‘ㄷ’자 모양으로 3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어, 영어로는 윙(wing)이라 부른다.
마치 날개처럼 나눠진 건물 이름이 각각 슐리, 리슐리외, 드농 관(館)이다. 슐리와 리슐리외는 프랑스의

중앙집권화와 탁월한 행정능력으로 강대국 프랑스를 만드는데 공헌한 재상의 이름이다.

드농은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여행가이며 대 루브르 박물관장인 도미니크 비방 드농이다.

 

 

 

 

박물관이 만들어진 역사를 나타내는데 나폴레옹(1769~1821)때 많은 확장을 한것을 알수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이집틍의 막대한 유물들은 나폴레옹을 등에 업고 드농이 가져왔다고 한다.

 






 

 


 

많은 예술품으로 가득한 복도

 

 

 

 

 

 

 

 

 

드디어 많이 보던 작품을 만난다...밀로의 비너스 ^^

 

 

 

 

BC 150년경 멘데레스 강 유역 안티오키아의 한 조각가가 만들었으며,

1820년 에게 해의 밀로스 섬에서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 원래 로마 여신의 이름이었으나

이후 아프로디테 등과 동일시되면서 모성과 아름다운 여성성을 상징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된다.

 

 

 

 

 

 

 

 

 

이 조각상의 앞태는 많이 보았는데 뒤태도 남겨본다...^^

 

 

 

 

 

 

 

 

 

천장에도 많은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승리의 여신 니케상...그리스 신화에서는 ‘니케(Nike)’

영어식은 스포츠회사 브랜드 이름으로 유명한 나이키이며, 반면 로마 신화에서는 ‘빅토리아(Victoria)’라고

부르며 승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빅토리(victory)’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니케 여신상은 드농관의 큰계단을 바라보고 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1863년, 에게해 북서부의 작은 섬 사모트라케에서 백여 점의 파편 조각으로

발견됐지만 끝내 머리와 양 팔은 발견하지 못했다. 기원전 190년, 로도스 섬의 주민들이 에게해에서

일어난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대리석 조각상으로 추정된다.

 

 

 

 

이 조각품은 마치 물에 떠 있는 듯이 보이게 설치한 기함(旗艦) 위에 세워져 있는데

헬레니즘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이다.

 

 

 

 

 

 

 

 

 

기울어진 날개의 각도, 왼쪽 다리의 위치, 바람이 불어 여신의 다리를 휘감은 듯한 옷의 표현은 조각을

보는 사람들에게 상이 날아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성모마리아상

 

 

 

 

 

 

 

 

 

가이드의 해설은 듣지도 못하고 사진 찍으며 구경하기 바쁘다.

 

 

 

 

 

 

 

 

 

드디어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만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의 부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를 위하여 그 부인을 그린 초상화.

일찍이 《모나리자》가 대낮에 루브르미술관에서 도난당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도 있었는데 그로부터 2년 후,

범인이 피렌체의 미술상 A.골리에게 팔러 나갔을 때, 골리의 기지로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가나의 결혼식...

칼리아리 파올로 베로네세의 작품으로 그림 크기가 가로 990cm,  세로 666cm로 초대형 그림이다.

결혼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성경 이야기를 베네치아 연회에 비유해서 그렸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

바로크 시대의 낭만파 화가 들라크루아의 대표작으로 자유를 동경하는 낭만주의자의 이상이 잘 드러나 있다.

군중을 이끌고 전진을 외치는 여인의 순수함과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풍기는 잔인함이 극적 대조를 이룬다.

깃발 뒤로 화염에 뒤덮인 도시와, 총칼을 들고 혁명의 행진을 계속하는 화면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메두사호의 뗏목(Raft of the Medusa)

낭만주의의 영향과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영향으로 웅대한 스케일의 역동적인 회화를 그렸던 제리코의

작품으로 실제로 있었던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의 침몰사건 후 당시 뗏목으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묘사했다.

치밀한 인체의 포즈들과 절망 속에서 수평선 멀리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리다 환호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제 박물관을 나와서 에펠탑으로 향한다...14:18

파리에서 가장 널은 광장인 콩코드광장을 지나는데 멀리 에펠탑도 보이고..오벨리스크도 보인다.

오벨리스크의 좌우에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 광장을 본뜬 분수가 있으며, 8개의 모퉁이에 코르투아 플라디에가

만든 여신상이 놓여 광장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 여신상들은 각각 마르세유, 낭트, 리옹, 보르도 등 프랑스의 8대 도시를 상징한다.

 

 

 

 

파리 한가운데 위치한 콩코드 광장은 처음에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다 1789년 대혁명 후에는

대혁명 광장으로 불렸다. 이곳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혼했고 단두대로 처형당했다.

이외에도 혁명군 지도자였던 당통과 로베스 피에르를 포함한 1,300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콩코드(Concorde)는 화합, 일치라는 뜻으로, 이 광장의 이름은 이러한 어두운 역사를 넘어

평화화 화합으로 나가자는 프랑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

 

 

 

 

광장의 중심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룩소르(Luxor) 오벨리스크(클레오파트라의 바늘)가 놓여 있다.

기원전 12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집트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것으로 1829년 이집트의 총독이자 군사령관이던 알바니아 출신의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다.

오벨리스크에는 프랑스로의 운송 과정이 묘사되어 있으며, 4년의 운송 기간이 걸렸다. 최상단 부분에

소형 피라미드 모습의 금박이 있었으나 아시리아인의 침입과 페르시아인의 점령 과정에서 분실되었는데,

프랑스 정부에서 복원 작업을 벌여 1998년 5월 14일 복원이 완료되었다. 복원 자금에는 약 1백 50만 프랑이

소요되었으며, 수명은 약 40년이다. 복원으로 인해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이전보다 2m 가량 높아지게 되었다.

 

 

 

 

이제 에펠탑 관광을 위해 나선다.

 

 

 

 

파리의 전경을 볼수 있는 에펠탑...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멋진 풍경을 구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