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나들이

안의삼동(安義三洞) : 거창 수승대 및 함양 용추폭포

행복 찾기 2021. 6. 23. 08:13

안의삼동(安義三洞)은 조선 후기까지 독립된 행정단위였던 안의현의 경치 좋은 3개 골짜기를 일컫는 말이다.

동천(洞天)은 도교적 이상향으로 세상사 시름 잊고 유유자적하는 곳, 마음에 평화를 주는 안식처다.

 

안의삼동의 세곳은 함양의 화림동 및 심진동과 거창의 명승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이다.

안의현은 조선 후기까지 함양 북동(안의·서상·서하면)과 거창 서북(북상·위천·마리면) 일대를 포괄하는 독립된

행정 단위였다. 그러나 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해체돼 함양과 거창으로 분리된다. 이인좌와 함께 반란을 주도한

정희량의 고향이 바로 안의였기 때문이다. 역적의 고향 안의의 유생들은 이때부터 벼슬길이 막히고, 자연을 벗 삼아

공부밖에 할 일이 없었으니, 경치 좋은 계곡마다 정자가 들어섰다는 게 안의삼동에 대한 해석이다. 

(출처 : 한국일보 자박자박 소읍탐방)

 

6월초 방문한 화림계곡에 이어서 이번에는 거창 수승대 및 함양 용추폭포를 둘러보며 안의삼동을 찾았다.

지금은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 관광지가 되어서 접근성도 좋고 경치도 탁월해서 어려움 없이 풍경을 즐겼다.

 

백두대간 산행후에 촉박한 일정과 지친 몸으로 짧은 시간동안 돌아보니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조금 더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곳이다. ^^ 

 

 

일시 : 2021.06.19 토

코스 : 거창 수승대 및 함양 용추폭포

 

 

 

 

거창 수승대는 국가지정 명승 제53호(2008.12.26 지정) 인 지역 명소로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계곡을 따라서 트레킹길이 설치되어 있는데 가볍게 거북바위만 한바퀴 돌아본다.

[문화유산여행길]
1코스 : 수승대-정온선생종택-모리재-강선대-농산리고인돌-만월당-갈계숲-행기숲-농산리석조여래입상

          -용암정-수승대 (14km, 4:30)
2코스 : 수승대-정온선생종택-농산리석조여래입상-강선대-농산리고인돌-만월당-갈계숲-행기숲-용암정

         -수승대 (9.9km, 2:40)

 

 

 

 

주차장에서 거북바위까지는 500m의 거리이다.

 

 

 

 

세익스피어의 동상과 함께...^^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요, 모든 인간은 제각각 맡은 역할을 위해 등장했다가 퇴장해버리는 배우에 지나지 않죠"

( 뜻대로 히세요의 대사중 }

 

 

 

 

멋진 솔밭이 파란하늘과 어울린다.

 

 

 

 

수승대는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든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 보낼 송()자를 써서 수송대()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 )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이라 하였는데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 )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구연서원()은 요수 신권선생이 죽은 뒤 그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재실은 서원이 되었다. 

서원 문루인 관수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이층 누각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왼편으로 덩그렇게 놓인 크고

펑퍼짐한 바위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천연스러움을 한껏 살렸다. 덤벙주초 위에 놓인 누하주()는 굽으면

굽은 대로 그저 껍질만 대충 벗긴 나무들을 그대로 썼다. 특히 안쪽 것들이 그렇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인데도

네 귀퉁이마다 추녀를 받치는 활주()를 세웠다. 왼편의 둘은 바위 위에 맞춤한 구멍을 뚫어 짧은 돌기둥을 박은 뒤 그 위에 올렸고, 다른 둘은 외벌대 기단 위에 길숨한 돌기둥을 마련한 다음 나머지를 나무로 이었다. 조금 되바라진

느낌이 있긴 하나 좌우로 뻗쳐올라간 처마선이 시원스럽고, 무엇보다 듬직한 바위와 어우러진 모습이 천연덕스럽다.

출처 : (답사여행의 길잡이 13 - 가야산과 덕유산, 2000. 2. 7.,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김효형, 홍선, 김성철,

         유홍준, 최세정, 정용기)

 

 

 

 

 

 

 

 

 

 

 

 

 

 

 

 

 

 

 

 

 

 

 

 

 

서원을 나와서 거북바위로 향한다.

 

 

 

 

멋진 모양의 거북바위가 보인다.

거북바위에는 짤막한 전설도 얽혀 있다. 장마가 심했던 어느 해, 불어난 물을 따라 윗마을 북상의 거북이 떠내려왔다.

이곳을 지키던 거북이 그냥 둘 리 없어 싸움이 붙었는데, 여기 살던 거북이 이겼음은 물론이다. 그때의 거북이 죽어

바위로 변했으니 거북바위가 바로 그것이라 한다.

 

 

 

 

거창 신씨 집안은 이 고장에서 널리 알려진 가문이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조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신권(, 1501~1573)선생이 있다. 자()는 언중(), 요수(樂)가 그의 호()이다.

일찍이 벼슬길을 포기한 그는 이곳에 은거하면서 자연을 가꾸어 심성을 닦고 학문에 힘썼다.

거북을 닮은 냇가의 바위를 ‘암구대’()라 이름짓고 그 위에 단()을 쌓아 나무를 심었으며,

아래로는 흐르는 물을 막아 보()를 만들어 ‘구연’()이라 불렀다. 

 

 

 

 

거북바위에는 퇴계 이황의 시 등 이곳을 찾았던 선비들이 읊조린 시문이나 이름 남기기 좋아하는

이들이 새긴 성명 석 자가 빈틈없이 가득하다.

 

 

 

 

 

 

 

 

 

 

 

 

 

 

 

 

 

 

 

 

 

 

 

 

 

 

 

 

 

 

 

 

바위위의 돌탑을 보자 역시나 돌탑을 만드는 옆지기...또 하나의 흔적을 남긴다.

 

 

 

 

요수정

신권선생이 냇물 건너편 언덕에 아담한 정자를 꾸미고 자신의 호를 따서 ‘요수정’(樂)이라 편액을 걸었다.

 

 

 

 

 

 

 

 

 

요수 선생이 처음 세웠던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고, 1805년에 다시 만든 것이 지금의 정자다.

 

 

 

 

 

 

 

 

 

 

 

 

 

 

 

 

 

 

 

 

 

 

 

 

수승대를 뒤로 하고 용추폭포로 향한다.

 

 

 

 

용추계곡 입구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발견한 선인장꽃

 

 

 

 

 

 

 

 

 

일주문 앞의 넓은 공터에 주차를 하고 용추폭포로 향한다.

그런데 용추폭포 앞에도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차로 이동이 가능한데 초행이다 보니 350m를 걸었다. 

 

 

 

 

용추폭포 인근의 넓은 주차장

 

 

 

 

 

 

 

 

 

2012년 2월 8일에 명승 제85호로 지정되었다. 기백산군립공원에서 발원하여 용추계곡을 흘러 내려온

물이 만들어낸 폭포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히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룬다. 

 

 

 

 

높이는 약 15m, 호소의 직경은 약 25m, 깊이는 약 10m이다.

 

 

 

 

지명은 수량이 풍부한 여름철에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용이 지축을 흔들며 승천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폭포가 있는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 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추폭포는 함양을 대표하는 함양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화가 난 용이 몸부림치듯 강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현재 용추사의 일주문인 옛 장수사의 일주문

신라시대에 창건했다는 장수사의 흔적이다. 한국전쟁으로 절간은 소실되고 없지만 홀로 남은 산문이다.

강원도 고성의 건봉사 일주문과 똑같은 사연을 가졌다.

 

 

 

 

 

 

 

 

 

용추폭포를 보고 내려오다가 본 물레방아

 

 

 

 

1792년부터 5년간 안의현감을 지낸 연암 박지원의 동상과 물레방앗간을 재현해 놓았다.

중국을 방문해 신문물을 접하고 돌아온 박지원이 국내에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설치한 곳이

바로 이 고을이라는 것을 알리는 시설이다.

 

 

 

 

거창의 수승대 와 함양의 용추폭포를 가볍게 돌아보고 안의삼동의 대표적인 나들이를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