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나들이

서울나들이8(선릉과 정릉,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풍납토성)

행복 찾기 2017. 1. 23. 22:45

이번에는 서울나들이를 강남으로 향한다.

그동안 가 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았던 선릉과 정릉 및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풍납토성이다.

 

선릉과 정릉 조선왕조의 능중에서 강남 한복판에 위치하여 가장 비싼 곳에 있는 왕릉이다.

선릉은 조선 성종과 계비 정현(貞顯) 왕후의 능이며, 정릉은 중종의 능으로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조선왕릉은 왕조 멸망후에도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리고 지하철로 이용하여 올림픽공원에 도착한후 몽촌토성 및 풍납토성을 이어서 걸어본다.

토성에는 많은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며 운동도 하고 산책을 한다.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한가롭게 선조들의 유적지를 돌아본다. 



일시 : 2016.11.27 일

 


 

우리나라의 조선 왕릉은 519년 동안 지속된 한 왕조의 왕과 왕비의 무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이다.

 

 

 


조선 왕조의 무덤은 총 119기인데 그중 임금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릉은 42기이다. 42기의 왕릉 중 40기가 2009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나, 옛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에 있는 2기는 북쪽에 있어 함께 등록되지는 못했다.

 

 

 


519년 동안 조선 왕조를 이끌었던 왕족의 무덤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누며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이 바로 ‘왕릉’이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묻혀 있는 곳은 ‘원’이라 하고, 13기가 있다. 그리고 대군, 공주, 옹주, 후궁, 귀인이 묻힌 장소는 ‘묘’라고 하는데, 모두 64기가 있다.

 

 

 


왕이라고 해서 모두 왕릉에 묻힌 것은 아니며, 종묘에 신주를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는 왕릉에 들어갈 수 없다. 제10대 왕 연산군과 제15대 왕 광해군은 종묘에 신주가 없고, 왕릉이 아닌 묘에 잠들어 있다.

 

 

 


홍살문 앞에는 참도라는 길이 이어져 있으며, 참도는 죽은 영혼(왕)이 이용하는 신도와 살아 있는 왕이 이용하는 어도로 나누어져 있다. 참도가 끝나는 지점에는 정자각이 있는데 정자각은 향을 올렸던 곳으로 실제로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정자각 뒤편은 본격적인 능침(무덤) 공간이에요. 정자각 뒤로 참도가 약간 이어진 끝에 무석인과 문석인, 석마 등의 돌조각이 놓여 있으며, 두 문석인 사이에는 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장명등이 있고, 무덤 앞에는 혼유석이라는 넓은 돌이 있다.

 

 

 


아름다운 소나무의 곡선

 

 

 


 

 

정현왕후릉

혼유석은 음식을 올려놓는 곳이 아니라 영혼이 능침에서 나와 휴식을 취하거나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으로 혼유석 뒤에는 능침(무덤)이 있다. 능침은 왕릉에 따라 난간석과 병풍석을 세운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왕이 잠들어 있는 무덤 주변에는 돌을 깎아 만든 동물 조각이 있으며, 끝자락에 곡장이란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규모는 다르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왕이 살아 있을 때 생활했던 궁궐을 옮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단풍의 색이 짙게 물들었다.


 

 


강남 삼성동의 중심에 위치하여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선릉과 정릉

 

 

 


조선 왕릉은 대부분 도읍지였던 한양 외곽에 위치해 있는데 왕릉은 도읍지의 4대문 10리 밖 80리(오늘날의 100리로, 당시의 10리는 요즘의 4km가 아니고 5.2km였어요) 안에 위치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궐에서 출발한 임금의 참배 행렬이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 왕릉은 궁궐을 중심으로 한양 외곽의 동남쪽과 서북쪽에 주로 모여 있게 되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강원도 영월의 장릉과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 여주의 영녕릉은 80리 밖에 위치하고 있다.

 

 

 


올림픽공원으로 이동

 

 

 


세계평화의문을 배경으로...

 

 

 


평화의 문은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의 대표적 상징 조형물. 건축가 김중업(金重業)이 설계했으며, 우리나라 고래(古來)의 대문을 상징하는 것으로 45억 원의 공사비를 투자한 지하 1층, 지상 4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조물. 올림픽 공원 정면 어귀에 세워져 있다.

 

 

 


 

 

 

 


 

 

 

 


장승을 형상화한 열주

 

 

 


 


 

 


 

 

 


 


 

 

 


 사신도의 색감이 현란하다.

 

 

 


 

 

 

 


만국기광장

 

 

 


서울의 만남이란 조형물로 세계 각국의 돌이 바닥 기단에 놓여있다.

 

 

 


 

 

 

 


 

 

 

 


 

 

 

 


 


 

 


 


 

 

 

산수유열매가 한가득 열렸다.


 

 


 

 

 

 


곰말다리에서 바라다 본 호수풍경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몽촌토성은 백제가 고대국가의 터전을 마련한 한성시대, 즉 3세기-4세기때 만들어진 거성의 하나이다.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된다. 사적 제 297호로 지정되어 있다.

 

 

 


1982년 7월 22일 사적 제297호로 지정된 토성은 둘레 약 2.7km, 높이 6~7m. 3세기 초에 축조. 1984·1985년의 2차례 발굴조사 결과, 목책(木柵)구조와 토성방비용 해자(垓子)로 되어 있는, 지금까지 확인된 바 없는 특수한 토성구조임이 밝혀졌다.

 

 

 


억새와 소나무가 잘 어울렸다.

 

 

 


평화의 문 뒤로 치솟은 123층 마천루

 

 

 


 

 

 

 


다음에는 9경 투어를 해 봐야겠다.

 

 

 


 

 

 

 


감나무에 까치가 앉아서 먹고 있다...까치밥이라고 하더니 먹는 모습은 처음 본다.

 

 

 


산토끼가 보인다...하늘공원에서도 보고 북한산에서도 보고...

의외로 야외에 풀어논 토끼들이 많다.

 

 

 


올림픽축구장

 

 

 


 


 

 


고즈넉한 가을풍경이다.

 

 


 


 

 

 


 

 

 

 


계속되는 문화재 조사

 

 

 


좌측에 나홀로나무가 보인다.

 

 

 


올림픽공원을 빠져 나와서 풍납토성으로 간다.

 

 

 


풍납토성 주변은 주택지이다.

한강 연변의 평지에 축조된 순수한 토성으로,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룬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500m, 남벽 200m, 북벽 300m 정도이며, 서벽은 1925년의 홍수로 유실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새로 제방을 쌓았으므로 서벽이 완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경기도 광주(廣州)에 속했는데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으며 서울 풍납동 토성이라고도 한다.

 

 

 


 

 

 

 


둘레 3,740m에 이르는 규모가 큰 평지 토성이었으나 현재는 2,679m 정도 남아 있다. 성벽의 표면은 잔디와 잡초로 덮여 있는데, 내부는 돌이 거의 없고 고운 모래로 쌓아 올렸으며, 외부의 경사면이 2단으로 축조된 흔적이 남아 있다. 북벽의 높이는 약 8m이고, 기초 부분의 너비는 약 30m이다. 동벽 외부가 깊어진 것은 축성용 채사(採砂)로 인한 것 같고, 동벽에 같은 간격으로 뚫려 있는 네 곳은 성문자리인 듯하다.

 

 

 


풍납토성을 끝으로 서울나들이 강남구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