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1-1(한강, 절두산성지, 덕수궁, 정동길)
서울 나들이를 나홀로 나선다.
서울은 500년 조선왕조의 흔적과 영욕의 근대사가 함께 있는 곳이다.
지식백과에 의한 한국사 구분을 참조하면
우리나라의 국가 성립 이후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까지를 고대, 고려시대를 중세, 조선시대를 근세,
개항 이후를 근대로 각각 설정하는 시대구분이 제시되어,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 근대사는 한국사의 한 부분으로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게 된 이후부터 광복 이전까지로 보고 있다.
발걸음을 내 딛는 서울 곳곳마다 지난 역사가 남겨있는데
가끔은 이렇게 옛사람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일시 : 2016.10.30 토
코스 : 한강(절두산성지), 정동길(덕수궁, 경희궁), 독립문, 조계사, 북촌마을 등
올림픽도로를 지나며 가양대교 부근에서 바라다 본 서울의 진산[ 鎭山 ]인 북한산 전경
합정역에서 내려서 한강공원으로 향하다 마주친 망원정
1989년에 복원되어 건물이 새것이다.
누각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면서 옛사람의 시선을 느껴본다.
망원동의 유래가 되는 장소이다.
가을날씨 답게 하늘이 파랗다...성산대교방향
여의도방향
망원정에 대한 자료들이 한가득이다.
망원정을 지나서 한강공원에서 바라다 본 풍경
억새와 함께 가을정취가 문씬난다.
한강을 따라서 양화대교를 지나니 카톨릭 순교 성지에 도착한다.
절두산 순교성지로 불린다.
조형물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신부
절두산 순교성지를 지나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나온다.
이곳들은 처음 와 보는 곳이다.
합정역에서 2호선을 타고 덕수궁으로 이동한다.
지금의 덕수궁(德壽宮)은 원래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명칭 변경은 태황제(太皇帝) 고종에게 덕수(德壽)라는 궁호(宮號)가 붙여지게 되면서 오늘날의 덕수궁이란 이름을 갖게 되는데, 덕수란 궁호는 왕위를 물려준 선왕의 덕과 장수를 기린다는 뜻으로, 조선 초 정종에게 양위(讓位)하고 물러난 태조에게 올렸던 궁호 이기도 했다. 이처럼 덕수궁이란 선왕에게 올리는 궁호의 보통명사인 것이다.
때마침 수문장 교대식을 하고 있다.
밀려드는 관광객의 볼거리를 위하여 시작한것 인데 많은 인파에 둘러쌓여 있다.
교대식은 연중 매일 3회한다.(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 )
단, 월요일 및 혹서기·영하 5℃ 이하의 혹한기,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은 행사가 쉰다.
덕수궁을 관람한다...중화전(보물 제819호)이다.
중화전은 규모:409.3㎡ 이며 고종께서 1897년에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하면서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였으므로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의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다.
광명문은 규모:56.53㎡이며, 1897년에 건립하였으나 1904년에 소실되었다가 중건된 목조 건물로
당초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1938년 미술관 개관 시 흥천 사종과 창경궁 자격루를 진열하기 위하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우측은 석조전 서관으로 규모:3,428.47㎡ 이며, 1936년 8월 기공하여 1938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이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화문(보물 제819호)은 통해서 본 중화전.
중화문은 규모:83.31㎡이며 1902년 건립된 중화전의 정문으로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만들어
세웠으며 본래 중화문 좌우에 행각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동측에 일부만 남아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서 정동길로 향한다.
나무에 이쁜 장식을 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 옆에 있는 배재학당 동관
외관은 몇번 보았으니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배재학당은 미국 선교사(宣敎師) H.G.아펜젤러(1858∼1902)가 세운 한국 최초의 서양식 학교건물이며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이다. 2001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배재학당을 거쳐서 정동교회를 가 본다.
중명전
대지 2,399㎡(727평), 건축면적 877.8㎡(236평)의 양식(洋式) 2층 벽돌집이다. 덕수궁 별채로 1901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자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중명전의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며, 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비운(悲運)의 장소다.
궁궐 내에 남아 있는 최초의 근대 건축물로 서울시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서울시에서 관리하였으나 문화재청으로 소유권이 이전 등기 되고(2006년 9월) 2007년 2월에 사적 제124호로 덕수궁에 포함되면서 서울시유형문화재 제53호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정동공원 도착...하얀건물의 구러시아 공사관이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