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나들이

영주 소수서원 및 선비촌

행복 찾기 2025. 6. 13. 07:49

백두대간 산행을 마치고 귀경길에

영주 소수서원 및 선비촌을 둘러본다.

 

소수서원은 최초로 국학의 제도를 본떠 선현을 제사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한 서원이었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유학자인 안향의 사묘를 설립한 후 1543년 유생교육을 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경상도관찰사 안현이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방책을 보완했다. 이 시기의 서원은 사묘의 부속적인 존재로서 과거공부 위주의 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황은 교학을 진흥하고 사풍을 바로잡기 위해서 서원 보급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사액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소수서원은 1868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존속했다.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보물 제59호 숙수사지당간지주·국보 제111호 회헌영정 등과 141종 563책의 장서가 남아 있다. 201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비촌은 한국 유교 문화 발상지인 소수서원과 바로 접하여 위치하며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하여, 우리 고유의 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설립된 테마파크이다.

 

소수서원 및 선비촌은 유료관람인데

서로 연결되어 통합 입장권으로 되어있다.

 

서원은 국가지정유산만 국보 1, 보물 5, 사적 1,

국가민속문화유산 1 외에 볼거리가 많다.

 

오후 시간임도 많은 관람객이 관리가 잘 된

소수서원을 찾아서 산책하듯이 돌아본다. ^^ 

 

 

일시 : 2025.06.07 토 맑음

코스 : 소수서원 및 선비촌

 

 

 

 

소수서원 도착

 

 

 

 

매표소로 향하며...

 

 

 

 

할인안내가 여럿 있는데 지역명칭도 있다.

주(州)가 들어가는 14개 지역이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곳 답게 안내판도 잘 정비되었다.

 

 

 

 

소수서원 홈페이지의 안내도

 

 

 

 

할인 없이 통합입장권으로 입장 ^^;;

 

 

 

 

매표소를 지나면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아람드리 소나무숲

 

 

 

 

당간지주...서원이전에 절이였음을 증명한다.

절에 법회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당(幢)이라는 긴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붙들어 고정, 지탱하는 기둥 2개를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절인 숙수사가 있었는데,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 당간지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후수인 은행나무...나무들이 기본 몇백년이나 되었다.

 

 

 

 

 

 

 

 

 

서원 정문인 지도문 앞...진입영역이라 한다.

 

 

 

 

서원 관람의 출발점이다...소수서원 입구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지면이 한 단 높아져, 이곳부터 서원 경내임을 알 수 있다. 서원 출입문인 지도문으로 통하는 길 왼쪽으로는 성생단(省牲壇)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죽계수(竹溪水)가 내려다보이도록 지은 경렴정(景濂亭)이 있다.

 

 

 

 

죽계수(竹溪水)가 내려다보이도록 지은 경렴정(景濂亭)

 

 

 

 

지도문 및 성생단

 

 

 

 

경내로 들어선다.

 

 

 

 

이곳은 강학영역이다.

 

 

 

 

강학당...명종임금의 친필 편액이 걸린 곳으로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있다.

 

 

 

 

일신제

 

 

 

 

직방제

 

 

 

 

제향영역

소수서원 문성공묘(紹修書院 文成公廟)는 소수서원의 경내에 있는 제향기능의 사당으로 안향을 주향(主享)으로,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문경공(文敬公) 안보(安輔)·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매년 3월, 9월 초정일(初丁日)날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주세붕이 직접 쓴 제향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홀기문서(笏記文書)가 전하고 있다.

 

 

 

 

장서각 앞의 정료대와 관세대

 

 

 

 

 

 

 

 

 

직방재...원생 및 교수의 숙소

 

 

 

 

 

 

 

 

 

영정각...1975년에 지은 건물로

안향 등 주자학 대가의 영정이 있다.

 

 

 

 

 

 

 

 

 

 

 

 

 

 

 

 

 

 

 

일영대...해시계이다.

 

 

 

 

‘한국의 서원’(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건립)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한국의 서원은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의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원은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고 그 결과 그 기능과 배치, 건축적인 면에서 변화를 겪고 토착화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특출한 증거로서 인정받아 201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9개 한국의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은 최초의 서원으로 서원의 시작과 발흥의 계기가 된 역사적 장소로 안향(安珦)을 기리고자 1543년에 건립한 최초의 서원이다. 풍기군수 주세붕은 고려 말 성리학을 들여온 순흥 출신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강당을 건립하여 백운동서원을 세워 유학 교육을 시작했으며,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조정에 건의하여 1550년(명종 5) 국왕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받아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소수(紹修)’는 ‘학문을 이어서 닦는다’라는 뜻이다.

 

 

 

 

사료관

 

 

 

 

성리학 및 소수서원에 대한 이력과

많은 자료가 있다.

 

 

 

 

 

 

 

 

 

돌아보니 조선 건국초에는 지배이념으로 불교를

대신한 성리학이지만 결국에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지배계층의 전유물로 전락하였다.

 

 

 

 

그 덕분에 변화하는 시대를 못 따라 잡고 서구사회에서도 도래된 시민혁명 등을 외면하면서 소위 성리학자라는 기득권층은  사회개혁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결국에는 동학농민 운동의 개혁물결을 놓치면서 지배층이 나라를 팔아 먹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누구도 변화 시킬수 없다.

좋은 글이라도 생각하고 실천이 중요하다.

 

 

 

 

 

 

 

 

 

충효교육관 앞

 

 

 

 

서원이전의 숙수사지 출토유물

 
 

 

 

 

 

 

 

 

계곡을 넘어 선비촌으로 향한다.

 

 

 

 

영주 선비촌은 한국 유교 문화 발상지인 영주 순흥 소수서원과 바로 접하여 위치한 곳으로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 역사관 확립을 도모하고자 설립된 체험 교육장이다. 선비촌은 와가 7가구, 초가 5가구, 누각 1동, 정사 2동, 정려각 2동, 성황당, 곳집 ,원두막 등이 구성되어 있다. 마을 내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옛 선비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한옥 숙박체험과 전통문화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숙박체험은 김상진 가옥, 해우당 고택, 인동장씨종택, 두암고택, 김문기가, 만죽재 등에서 진행된다. 전통문화체험은 강학당에서 진행되며, 한지공예, 염색, 규방 체험 등이 있다.

 

 

 

 

먼저 소수박물관으로 향한다.

 

 

 

 

 

 

 

 

 

살짝 언덕에 위치한 박물관

 

 

 

 

마당에는 전통놀이가 펼쳐져있다.

 

 

 

 

박물관 입구...우측 특별전시실부터 돌아본다.

 

 

 

 

기증유물로 전시되었다.

 

 

 

 

상설전시실로 향한다.

 

 

 

 

 

 

 

 

 

소수서원과 유교에 대한 안내

 

 

 

 

조선의 통치이념이 된 유교

 

 

 

 

 

 

 

 

 

 

 

 

 

 

다양한 유교관련 자료

 

 

 

 

 

 

 

 

 

 

 

 

 

 

다양한 자료와 깔끔한 관리가 돋보인다.

 

 

 

 

 

 

 

 

 

조선초에 출발이 좋았으나 조선말에는 서원의 폐해로 인해 서원철폐도 일어났다. 

 

 

 

 

 

 

 

 

 

선비의 풍류묘사...어찌보면 이들은 조선의 상류층으로 조선 왕조의 정당성을 지킨 공로와 학문을 연마한다는 구실로 세월을 즐기며 위풍당당하게 삶을 즐겼으나 결국에는 신분제 등에 따른 기득권의 삶으로 일반 백성들의 어려움은 외면한 양면성을 가진 삶일수도 있다.

 

 

 

 

상설전시장을 나오니 주자학 대가들의 흉상이 보인다.

 

 

 

 

소수박물관 야외전시물

 

 

 

 

선비촌으로 향한다.

 

 

 

 

선비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선비촌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禮)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이며,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는 순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였던 회헌 안향 선생의 고향이다. 선비촌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비의 정신과 태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건립되었다. 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며 그들의 정신을 담은 수신제가(修身薺家), 입신양명(立身 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의 4가지 구역으로 조성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마을 공동체 형태로 구성하여 옛 영주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각 가옥별로 거주했던 사람들의 신분에 맞는 가옥 규모에 여러 가구와 생활도구를 전시하였으며, 선비의 일생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직·간접체험 공간을 제공하였다.

 

 

 

 

수신제가...선비들의 기본 몸가짐 

 

 

 

 

 

 

 

 

 

고택들을 복원하였다.

 

 

 

 

 

 

 

 

 

 

 

 

 

 

 

 

 

 

 

다양한 한옥을 둘러본다.

 

 

 

 

 

 

 

 

 

 

 

 

 

 

이번에는 초가집이다.

 

 

 

 

재단장을 하는지 출입금지구간이다.

 

 

 

 

선비촌을 나와서 죽계천을 걷는다.

 

 

 

 

 

 

 

 

 

탁청지를 배경으로...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바라다보이는 죽계수에 위치한 경(敬)과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음각된 바위. 죽계천은 멀리 초암계곡에서 발원한 계곡으로 주위의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울창한 노송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이경치를 바라보면 경(敬)과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음각된 바위가 있다. 취한대(翠寒臺) 아래에 있는 석벽에 신재(愼齋 周世鵬)가 손수 백운동(白雲洞)과 경(敬)자를 써서 새겼다. 주세붕이 쓴 글에 “경(敬)은 구차함의 반대이니, 잠깐이라도 구차하다면 이는 곧 불경(不敬)이다.”라고 경(敬)에 대하여 설명하고 더불어 회헌(晦軒 安珦)을 공경하고 기리는 뜻도 포함한다고 전한다. 그때 흘린 의사들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이곳에서 약 7km 떨어진 동네 앞까지 가서 멎었다고 해서 지금도 동네 이름을 “피끝마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경자바위를 뒤로 하고 소수서원을 나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