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나들이 : 국립현대미술관-청주역사-청녕각-성안길-용두사지철당간-상당산성
올댓스템프의 청주나들이를 이어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역사, 청녕각, 성안길, 용두사지철당간, 상당산성을 둘러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국에 4곳(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이 있는데 마침 청주에서는
피카소의 도예전이 열리고 있어서 의미있는 관람이 되었다.
청주역사는 1921년 11월 1일 조치원과 청주간의 충북선 개통에 따라 최초 청주역으로
건설되었고 철도 직선화 사업에 따라 1968년 11월 7일 구 청주역은 현재 우암동의
청주문화방송 자리로 옮기면서 폐쇄되었고 리모델링을 거쳐 전시실로 탈바꿈했다.
이어서 인근의 용두사지철당간을 보려고 상당구청에 주차를 하니 조선시대 관아인
청녕각을 보게 되고 청주의 명동인 성안길을 걷다가 용두사지철당간을 만났다.
도심지내에 짧은 동선으로 여러명소 및 볼거리를 만나면서 청주의 역사 및 문화를
보게 되니 여행의 동선을 짜기도 수월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
일시 : 2023.09.27 수 비 그리고 흐림
코스 : 국립현대미술관-청주역사-청녕각-성안길-용두사지철당간-상당산성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주차장도 2시간 무료이고 마침 방문한 날이 "문화가 있는 날"이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입장 전에 주의사항으로 사진은 찍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전시실 들어가기 전에 포스터와 함께 한컷
5층의 기획전시실에서 피카소 도예107점이 전시되었다.
이 작품들은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이다.
팜플렛의 작품사진으로 대체하고 간략한 설명이 있어서 올려본다.
피카소(1881년~1973년)는 스페인 출신의 천재적인 화가, 작가, 에술가로 큐비즘(입체파)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장르를 개척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어떻게 하면 평면에서 입체의 여러 면(특성)을 한 번에 나타낼 것인가"라는 개념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명쾌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전시실 한 켠에는 피카소 영화가 상영중인데 도자기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잘 소개되었다.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유명화가의 경우 생전에 대접을 받으며 가치를 평가 받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작품이 경매에서 몇백억원에 거래되는 화가인 고흐는 살아있을 당시
화가로서 실패했으며, 생전 단 한 작품만이 판매됐다고 한다.
그런데 피카소는 초기에 잠시 어려움이 있었으나 살아 생전에 천재화가로서 대접을 받으며
부와 명예를 누리고 오랜시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큐비즘(입체파)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표작으로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이 있다.
피카소는 미술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알렸는데 대표적으로 《게르니카》 는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치 독일 공군의 폭력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1938년)을 고발한 것이고, 한국 전쟁에서 벌어진 미국의 잔학행위(예: 미군이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에서 한국인들을 전투기와 기관총으로 학살한 노근리 학살)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1951년 그는 '한국의 학살'(Massacre in Korea)을 발표하였고,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의 개입을 반대하였다.
작년 이맘때 스페인를 여행하며 피카소의 얘기를 잠시 들으면서
자전거 안장과 핸들로 만든 <황소머리>라는 작품을 보고 창의력에 감탄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5층의 피카소 전시를 둘러보고 아래층으로 이동하면서
층별 전시물을 돌아본다.
'보이는 수장고'에서 전시하는 이건희 켈렉션 중 백남순의 <낙원>
변관식의 <무장춘색>
5층에서 시작한 관람은 층별로 전시된 공간을 거치면서 약 1시간 동안 즐겼다.
2023 청주 공예비엔날레도 옆건물에서 하는데 일정상 패스한다.
청주역사(1921~1968) 도착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에 위치한, 옛날 청주역이 있었던 자리
1921년 최초의 청주역은 철도 직선화 사업에 따라 1968년 11월 7일 구 청주역은 우암동에 있는 현재 우암동의 청주문화방송 자리로 옮기면서 이곳에 있던 기차역은 폐쇄되었다. 그런 후에 청주문화방송 자리의 청주역은 다시 흥덕구 정봉동으로 옮겨져 오늘날의 청주역이 되고 있다.
한국 철도의 역사를 알수 있다.
깨끗하게 리모데링된 전시관
예전 기차 객석
세번 자리를 옮긴 청주역사
내부가 엄청 깔끔해서 관람하기에 좋다.
선로가 있는 대합실 광경
청주역사 건너편에는 가을꽃들이 만개하여 가을가을한다.
엄청 큰 코스모스...얼굴을 덮을 정도이다.
청주역사를 뒤로하고 용두사지철당간을 보려 상당구청에
주차를 하니 조선시대 관아였던 청녕각이 보인다.
상당구청 내에 있는 건물로, 조선시대 청주목사가 집무하던 관아이다. 1982년 12월 1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동헌은 감사(監司) 또는 수령(守令)이 공무를 집행하던 관아의 중심건물을 말한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단층 팔작집으로 그동안 군청의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많은 부분을 개수하여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으나 관아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율곡선생수식송비
성안길을 걸으며 용두사지철당간을 만나러 간다.
성안길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안에 있는 큰 길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는데
충북 광역행정과 금융의 중핵기능과 함께 도심상업지구로 발전하였다.
성안길을 잠시 걷다가 만난 용두사지철당간
각각 지름 46~39cm, 높이 65cm 가량의 철통 20개를 쌓아 올려서, 전체적으로 13.1m에 달하는 일종의 탑을 이루고 있다. 본래 철통의 속은 비어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를 채워 보수하였다. 또한 본래 몸체는 철통 30개로 이루어졌으나 10개가 소실되어 현재에는 20개만 남아있다.
세번째에 위치한 용두사철당기
이 유물은 건립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래 철당기 맨 끝(이미지 오른쪽)을 보면 준풍(峻豊) 3년 2월 29일에 건립했다고 되어있어 고려 광종 13년(962년)에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가히 1000년도 전의 유물로 현 청주시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재미있게도 용두사지 철당간의 국보 지정 연도는 1962년으로 건립 연도로부터 딱 1000년이 되는 해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에 있는 고려시대의 당간으로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지주는 높이 4.2m이며, 철당간 높이 12.7m, 철통 높이 0.63m, 철통지름 0.4m이다.
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국보 제297호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와 함께 청주시의 3개 뿐인 국보이며 또한 다른 두 국보와 달리 건조물 형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5 청주목 고적조에서도 이 철당간을 銅檣(구리 돛대)라고 언급한 기록이 있다. "고을 성안 용두사에 있다. 절은 폐사가 되었지만 돛대는 남아있으며 높이게 10여 길이다"
용두사지철당간을 만나고 일정상 청주시내를 벗어난다.
괴산의 숙소로 향하는 동선에 위치한 상당산성으로 이동한다. ^^
상당산성은 시내를 벗어난 지역인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구축된 둘레가 4km를
넘는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1970년 10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상당산성이란 명칭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듯하다.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공남문 전경...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공남문 아래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1996년 현재 이 성내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년(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산성의 면적은 1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천년고도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상당산성은 청주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상당산 능성 따라 이어진 성벽은 산을 돌아가며 둘레 4.2km, 높이 4~5m의 성곽이다.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았다. 성 안에는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공남문(남문)과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 치성 3곳과 수구 3개소가 있다. 조선군이 훈련하던 동장대는 1992년에 복원해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성을 한바퀴 돌고 내려오면 성안에는 전통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전통마을에서 맛보는 전통주와 빈대떡은 산성을 돌고난 고단함을 풀어준다고 한다.
일정상 시간이 없어서 남문 주변을 살펴보고 돌아선다.
다음에는 산성을 한바퀴 돌고 전통주를 맛보고 싶다.
남문 앞에 위치한 청주 구룡사 사적비
다음을 기약하며 괴산으로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