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나들이

고궁나들이...창덕궁 및 창경궁

행복 찾기 2022. 3. 2. 07:47

오랜만에 서울 고궁나들이를 나서며 창덕궁 및 창경궁을 가볍게 둘러본다.

서울은 조선의 오백년 도읍지로 그 역사가 담긴 5대 궁궐 및 종묘가 위치하고 있다.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바삐 움직이면 하루에 다 볼수도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수많은 외국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인데

지금은 내국인만 간간이 찾으며 한산한 풍경이다.

 

예전에도 몇번 방문한 곳이라 새로울 것은 없지만 여유있게 고궁의 정취를 느껴본다. ^^

 

 

일시 : 2022.02.26 토

코스 :  창덕궁 및 창경궁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배경으로...

창덕궁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돈화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천연기념물인 회화나무가 줄지어 있다.

 

 

 

 

 

 

 

 

 

 

 

 

 

 

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 25년(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 과 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사용한 후 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장소로 쓰이던 인정전, 국가의 정사를 논하던 선정전 등의 치조공간이 있으며, 왕과 왕후 및 왕가 일족이 거처하는 희정당, 대조전 등의 침전공간 외에 연회, 산책, 학문을 할 수 있는 매우 넓은 공간을 후원으로 조성하였다.

 

 

 

 

건물배치에 있어 정궁인 경복궁, 행궁인 창경궁과 경희궁에서는 정문으로부터 정전, 편전, 침전 등이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궁궐의 위엄성이 강조된 데 반하여, 창덕궁에서는 정문인 돈화문은 정남향이고, 궁안에 들어

금천교가 동향으로 진입되어 있으며 다시 북쪽으로 인정전, 선정전 등 정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편전과 침전은 모두 정전의 동쪽에 전개되는 등 건물배치가 여러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전 공간의 건축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여 높게 하였고, 침전건축은 정전보다 낮고 간결하며,

위락공간인 후원에는 자연지형을 위압하지 않도록 작은 정자각을 많이 세웠다.

 

 

 

 

 

 

 

 

 

인정전...왕이 나와서 조회() 하던 궁전으로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등이 있다.

조선 태종 5(1405) 창덕궁과 함께 창건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순조 3(1803)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한 것으로, 구조와 양식을 비롯하여 단청 장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선 후기 건축을 대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보로, 국보 정식 명칭은 창덕궁 인정전이다.

 

 

 

 

 

 

 

 

 

내부전경...일월오악도가 있는 곳이 용상이다.

 

 

 

 

천정전경

 

 

 

 

인정전에서 바라다 본 인정문

 

 

 

 

선정전으로 향한다.

 

 

 

 

 

 

 

 

 

 

 

 

 

 

선정전 내부...일월오악도가 보인다.

 

 

 

 

 

 

 

 

 

토요일 오후임에도 관람객이 적어서 한산하다.

 

 

 

 

 

 

 

 

 

창덕궁을 크게 4권역으로 나누어서 해설을 하고 있다.

 

 

 

 

단청의 문양 및 색감이 화려하다...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문양인 금빛의 오얏꽃이 보인다.

조선이 오얏꽃(자두꽃)을 왕실의 나무로 삼은 적은 없으나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오얏꽃(자두꽃)은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되었다.

 

 

 

 

신라말 도선국사는 『도선비기』에서 5백년 뒤에 한양(서울)에 오얏, 즉 이씨 성을 가진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래서 고려 중엽 때에 오늘날의 서울 지역에 남경(南京)을 설치하고 이 지역에 오얏나무를 많이

심었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베어버려 이씨의 왕기(王氣)를 다스리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1392년 이성계가 한양(서울)에 조선을 개국하였다.

 

 

 

 

 

 

 

 

 

 

 

 

 

 

대조전...창덕궁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이곳에서 조선의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대조전 후원

 

 

 

 

아궁이도 보인다.

 

 

 

 

조각이 장식된 굴뚝

 

 

 

 

 

 

 

 

 

 

 

 

 

 

 

 

 

 

 

 

 

 

 

 

 

 

 

 

 

창덕궁을 지나서 창경궁으로 들어선다.

예전에는 무료통행하던 곳인데 별도로 입장료를 받는다. 

 

 

 

 

창경궁은 조선 9대조 임금인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로 사적 제123호이다.

 

 

 

 

통명전방향...창경궁 터의 역사는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이 즉위한 1418년 고려의 남경(南京) 이궁(離宮) 터에 상왕 태종을 위한 수강궁(壽康宮)을 세운 것이다.

성종은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 보완하면서 공사 도중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경궁은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후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離宮)으로서 활용 빈도가 높아졌다.

 

 

 

 

통명전 전경

 

 

 

 

 

 

 

 

 

창경궁에서 특히 중요한 건물은 명정전과 명정문 그리고 홍화문 등인데, 이들은 현존하는 궁궐 건물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하는 건물들로 건축기법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풍기대 및 앙구일구

 

 

 

 

 

 

 

 

 

 

 

 

 

 

 

 

 

 

 

성종태실 및 태실비

 

 

 

 

 

 

 

 

 

 

 

 

 

 

 

일제강점기때 많은 전각들이 헐리거나 일제에 의해 훼손과 변형이 이루어 졌다. 1907년부터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昌慶園)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부분에 도로를 개설하여 맥을 끊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명정전 전경

 

 

 

 

명정전을 배경으로...

 

 

 

 

명정문 너머로 홍화문이 보인다.

 

 

 

 

 

 

 

 

 

명정전을 돌아보고... 

 

 

 

 

명정문을 나선다.

 

 

 

 

창경궁을 나서서 홍화문을 바라보며 가벼운 고궁 나들이를 마친다. ^^